기억 보조 장치
어쨌든 살아가야 한다는 보편적 감정 - 뮤지컬 《빨래》 본문
뮤지컬 《빨래》, 2021.11.20. 유니플렉스 2관
1)
뮤지컬 '빨래'는 2000년대 초 달동네를 중심으로 그곳 사람들의 서울살이 애환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영은 문학에 뜻을 품고 강원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으나 이사를 반복하다 이곳 달동네로 이사를 온다. 생계를 위해 서점에서 일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일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몽골 출신 이웃 청년 솔롱고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허름한 동네에는 주인할매, 희정엄마, 구씨, 마이클 등... 각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좁은 동네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2)
작중 배경은 90년대 말 IMF가 휩쓸고 간 2000년대 초반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움 속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 이라고 생각했는데, 작품에서 묘사된 삶의 어려움이라는 것이 꼭 이 시대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서로 부대끼며 이런저런 일들이 생기고, 일터에서는 갑질당하는 서러움을 겪고, 꿈이 있던 나의 모습과 지금의 괴리... 이 작품은 7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고 해도 설득력이 있고, 80년대, 90년대, 심지어 2022년 오늘날이 배경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작품이 담아내는 것들이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시에 열악한 주거환경, 빈부격차, 노사의 주종관계로부터 비롯된 억압 등의 문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작품의 배경 설정은 역사 유물로 남겠지만, 이 연극은 보편적 감정을 유지하면서 의복, 무대 장치 등의 외연만 바꿔가며 오래 생존할 것 같다.
3)
사람들은 각자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특히 이 동네 사람들이 겪는 아픔은 그 짓누르는 무게가 무겁고, 마치 쉽게 떨어지지 않는 옷의 찌든 때와 같다. 혼자서는 떨어내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 이런 때는 함께 빨래함으로써 그나마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서로의 빨래감이 눈에 보이는 좁은 이곳, 사생활이랄 것이 존재하기 힘든 이러한 여건에서 오히려 서로의 빨래를 도와줌으로써 이곳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고, 서로가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4)
솔롱고 역의 배우 강기헌의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듣기도 편하고 전달이 잘 되어서 좋았다.
5)
연극이나 뮤지컬 공연은 영화관과는 다르게 좌석이 매우 협소하다. 그래서 내가 조금만 자세를 달리 해도 다른 관객에게 폐를 끼치게 될 수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이런 류의 관람에서는 온갖 예절들이 덕지덕지 붙기 마련이다. 보다 편안한 관람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여건이 조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