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작품 감상/영화 (31)
기억 보조 장치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1) 시드니 루멧(Sidney Lumet, 1924-2011) 감독의 1957년작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법정 배심원들의 토론 장면을 다룬 영화다.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젊은이가 사형 판결을 받을 유죄(guilty)인가 아닌가(not guilty), 곧 살인범인가 아닌가를 두고 배심원들이 판단을 내리려 한다. 배심원들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유죄 여부를 결정하려는데, 날씨도 푹푹 찌는 상황에서 다들 그냥 유죄로 빨리 끝내버리자는 와중에 어느 배심원 하나가 신중할 것을 요청하면서 논쟁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찬반을 향한 다양한 논증들이 전개되는데, 한정된 장소에서만 전개되는 고전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몰입감을 느끼..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ète sauvage, Divoká planeta, Fantastic Planet)》, 1973 1) 르네 랄루(Rene Laloux, 1929-2004), 롤랑 토포르(Roland Topor, 1938-1997)의 SF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스테판 울(Stefan Wul, 1922-2003)의 소설 『Oms en série』(1957)을 원작으로 한다. 평소 한국어, 영어, 일본어 외에 다른 언어 영상 매체를 접할 일이 많지는 않은데, 프랑스어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인상깊다. 특히 지도자 씬(maître Sinh)을 연기한 Jean Topart의 목소리가 상당히 듣기 좋았다. 2) 어느 먼 미래, 파란 몸에 붉은 눈을 한 거대 외계인 트라그인들(les draags, ..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2019 1) 뉴욕(New York)은 단순히 미국의 여러 도시들 중 하나 이상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맨해튼의 타임스 스퀘어로 대표되는 현대적인 도시의 전형적인 인상을 제공하며, 동시에 브로드웨이,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등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미국 주류 WASP, 할렘의 흑인 문화, 브루클린의 유대인 및 다양한 이민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건축물과 유럽 풍의 건축물 등 다양하면서도 얼굴을 지닌 이 뉴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동경을 품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뉴욕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의 단면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예술에 대한 소양이 있는 주인공과 그가 걸어가는 올드한 매력의 뉴욕의 골목..
영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2019 1) 제목은 '결혼 이야기'지만 내용은 '이혼 이야기'이다. 결혼 생활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니콜이 찰리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아들 헨리에 대한 양육권을 두고 둘의 공방이 시작된다.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이제는 갈라서지 않고서는 서로를 가장 증오하는 사이가 되었다. 깊은 사이였던 만큼이나 이혼의 과정에서 관계가 뜯겨져 나가는 고통을 전해진다(일-양육-이혼 소송 사이의 어려움을 다룬 영화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추천). 2) 당초 변호사를 끼지 않고 갈라서고자 했으나, LA 출신인 니콜이 LA에 아들 헨리와 함께 있는 동안 변호사 노라를 고용하여 LA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 싸움이 본격화된다. 양육권의 지분을 보..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Baby Driver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8 1)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다룬 작품들은 이미 많다. 그 중에서 이 작품은 그 잔인하고 끔찍할 수 있는 소재를 아이의 시선에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아니면서도 홀로코스트 문제를 적절히 다룬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청소년 및 학생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영화를 간만에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코스트나 전쟁 등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다루는 영화는 그 본질상 표현이 거칠어지기가 쉬운데, 그 표현이 현실적인 것일수록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교육용으로 활용하기가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홀로코스트의 내..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2017 1)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가진 '베이비(Baby)'는 빚진 것을 갚기 위해 강도단의 범죄행각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새로 만난 연인 데보라, 그리고 청력은 없지만 선한 양아버지를 위해 이 일을 그만두고자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 2) 베이비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이명을 가지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내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살고 있다. 에드가 라이트(Edgar Wright) 감독은 이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화 내내 다양한 노래들이 흘러나오도록 구성했다. 등장인물들의 동작 하나하나, 주변 사물들이 내는 소리들까지 모두 음악에 어울리게끔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히 멜로디나 박자가 아니라 가사마저도 상황에 부합한다는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1)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는 서로의 인생 76년을 공유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도 두 분의 애정은 시작된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저 낙엽, 개울물, 눈으로 하는 가벼운 장난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곳에서 미소와 웃음이 올라오니, 화려한 기교로 만들어진 대사나 상황이 주는 웃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누구든지, 혹은 지금 당장 그러한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이런 노부부의 모습으로 상상으로 그려내지 않을까? 하지만 누구나 그러한 상상을 한다고 해도 누구나 그러한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정도만큼이나 그러한 사람들이 ..
영화 《나의 첫 번째 슈퍼스타(The High Note)》, 2020 1) 그래미 상을 수차례 수상한 흑인 여성 R&B 슈퍼스타 그레이스 데이비스는 새로운 정규 앨범을 출시하는 것보단 공연과 라이브 앨범에 전념하면서 중년의 삶을 보내고 있다. 대단히 훌륭한 음악적 경력을 쌓았고 대체로 낙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장기간 정규앨범을 출시하지 않아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발전이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품고 있기도 하다. 그레이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조하는 개인 비서 매기 셔우드는 그레이스의 오랜 팬이어서 비서 생활을 비교적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음악 프로듀서라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틈을 내어 노력하는 중이다. 2) 그레이스 데이비스는 장기간 새 정규앨범을 출시하지 않았지만..
영화 《아버지의 초상(La loi du marche)》, 2015 원제 뜻: 시장의 법칙 영어 제목: The Measure of a Man 1) 티에리는 부당한 구조조정을 당했지만 저항할 힘을 이미 잃고, 새 직장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랑하는 아내, 장애가 있지만 꿈을 향해 노력하는 아들, 오랜 정이 깃든 집...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새 직장에 어렵게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소중한 것, 내면의 무언가가 서서히 무너져감을 느낀다. 2) 시장의 법칙이란 개인의 사정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취업 프로그램은 자기 책임만 다 이루면 된다는 식이고, 오랜 시간 보금자리였던 집은 시세로만 평가받는다. 직장에서는 감시카메라 보안요원으로 일하면서 고객들의 절도나 직원들의 근무태만이나 부정 등을 감시한..
영화 《우리 선생님을 고발합니다(Ucitelka)》, 2016 영어 제목 The Teacher 1) 1983년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어느 초등학교 교사 마리아 드라즈데초바는 담임으로 등장하는 첫날부터 학생들을 한명씩 세워놓고 각자 부모의 직업이나 배경 등을 말하게 한다. 이후 학교 공산당 대표당원이라는 권위, 소련에 살고 있다는 인맥, 성적을 매길 수 있는 권한 등을 악용하여 학생 및 학부모들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이나 청소 등 온갖 사적인 착취를 감행한다. 참다못한 학부모와 교장이 뜻을 모아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학부모 회의를 소집하지만, 학부모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2)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1968년 '프라하의 봄([체]Pražské jaro, [슬]Pražsk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