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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보조 장치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 1) 시드니 루멧(Sidney Lumet, 1924-2011) 감독의 1957년작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법정 배심원들의 토론 장면을 다룬 영화다.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젊은이가 사형 판결을 받을 유죄(guilty)인가 아닌가(not guilty), 곧 살인범인가 아닌가를 두고 배심원들이 판단을 내리려 한다. 배심원들이 열악한 상황 속에서 유죄 여부를 결정하려는데, 날씨도 푹푹 찌는 상황에서 다들 그냥 유죄로 빨리 끝내버리자는 와중에 어느 배심원 하나가 신중할 것을 요청하면서 논쟁이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찬반을 향한 다양한 논증들이 전개되는데, 한정된 장소에서만 전개되는 고전 흑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몰입감을 느끼..
뮤지컬 《빨래》, 2021.11.20. 유니플렉스 2관 1) 뮤지컬 '빨래'는 2000년대 초 달동네를 중심으로 그곳 사람들의 서울살이 애환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나영은 문학에 뜻을 품고 강원도 고향을 떠나 서울로 왔으나 이사를 반복하다 이곳 달동네로 이사를 온다. 생계를 위해 서점에서 일하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일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살고 있는 몽골 출신 이웃 청년 솔롱고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허름한 동네에는 주인할매, 희정엄마, 구씨, 마이클 등... 각자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좁은 동네에서 부대끼며 살아간다. 2) 작중 배경은 90년대 말 IMF가 휩쓸고 간 2000년대 초반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려움 속에 빠진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 이라고 생각했는데,..
유현준 지음, 『공간이 만든 공간: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을유문화사, 2020 1) 사람은 보통 자기가 살아온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인데, 건축가인 저자는 공간이라는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전공 특성상 사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게 있어 이러한 접근은 상당히 신선했으며, 한편으로 나의 시선이 특정한 방식으로 한정되지 않았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만나는 일이 주는 즐거움은 나로 하여금 책 읽기를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 2) 책의 구조는 동양과 서양이 각자의 여건에서 서로 다른 공간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자연스레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발전시켜왔음을 설명한다. 비가 많이 오는 동양은 벼농사를 짓고 주어진 재료 특성상 목조 건물이 주류가 되고, 이에..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맥베스』, 민음사, 2004 William Shakespeare, 『The Tragedie of Macbeth』, 1606 1)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로 여겨지는 이 책은 동명의 스코틀랜드 국왕의 일생을 바탕으로 지은 것이다. 극중 맥베스는 친구 뱅코와 함께 전공을 세우고 귀환하다 마녀의 에언을 듣게 된다. 이에 따라 맥베스는 왕이 될 것이며, 뱅코의 자손들도 왕이 되리라는 내용이다. 처음에 믿지 않던 맥베스였지만 예언이 점점 현실화되자 그에 사로잡히게 되고, 끝내 던컨 왕을 죽이고 왕이 된다. 그러나 뱅코에 대한 예언이 두려워 뱅코를 죽게 만들고, 잔혹한 통치를 하며 미쳐간다. 이미 영혼이 파멸해버린 맥베스, 결국 던컨 왕의 아들 말콤 및 맥더프의 군대..
김찬호 지음, 유주환 작곡, 『모멸감: 굴욕과 존엄의 감정사회학』, 문학과지성사, 2014 1) '모멸'은 '업신여기고 얕잡아 봄'을 의미하고, '모멸감'은 그 모멸스러움을 느낌을 말한다. 사람들은 무시당하고 격하당하는 느낌을 대단히 싫어하고, 심지어는 그 감정으로 인해 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정도의 느낌마저도 받는다. 실제로 모멸을 느낀다고 생명이 끝나는 것은 아니나,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해 느끼는 무의미감이 주는 파급은 그만큼이나 중대하게 다가온다.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알어?" 모멸이 불러오는 폭력과 파괴의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요새 주목을 받는 '혐오'만큼이나 걱정해야 할, 사회적으로 만연한 감정이 바로 이 '모멸'이다. 2) 모멸감은 예로부터 있어왔겠지만, ..
김현성 지음, 『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 웅진지식하우스, 2021 1) 한국 정치사는 선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역사는 1948년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거 제도의 변화와 함께 굴곡을 겪어왔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를 당시 있었던 이야기로 서술하는 일종의 교양 역사책이다. 굵직한 시기별로 챕터를 묶어 그 시기별로 포함된 선거가 어떤 배경을 지니고 실시되었는지, 어떤 전개와 영향을 초래했는지를 서술한다. 챕터별 부록에는 우리 선거에 관련된 용어 설명, 기록, 투표용지나 투표함 등 소소한 지식을 전해준다. 2) 일반적인 서술 논조는 중립적인 서술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책의 출판 시기가 2021년 7월이라 그런지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압승으..
김상균, 신병호 지음,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 베가북스, 2021 1)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화두 중 하나가 '메타버스(metaverse)'다. 이는 초월(meta)과 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가 생산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새로운 디지털 기구"라고 한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등을 그 분류로 삼는다. 여기에 'SPOCE 모델'에 따라 연속성(Seamlessness), 실재감(Presence),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 동시성(Concurrence), 경제 흐름(Economy Flow)을 두루 갖춰야 메..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ète sauvage, Divoká planeta, Fantastic Planet)》, 1973 1) 르네 랄루(Rene Laloux, 1929-2004), 롤랑 토포르(Roland Topor, 1938-1997)의 SF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스테판 울(Stefan Wul, 1922-2003)의 소설 『Oms en série』(1957)을 원작으로 한다. 평소 한국어, 영어, 일본어 외에 다른 언어 영상 매체를 접할 일이 많지는 않은데, 프랑스어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인상깊다. 특히 지도자 씬(maître Sinh)을 연기한 Jean Topart의 목소리가 상당히 듣기 좋았다. 2) 어느 먼 미래, 파란 몸에 붉은 눈을 한 거대 외계인 트라그인들(les draags, ..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김영사, 2020 Hope Jahren, 『The Story of More: How We Got to Climate Change and Where to Go from Here』, 2020 1)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이 문제는 분명히 제대로 해결되기는 커녕 점진적으로 악화되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경각심은 오히려 무뎌진 것처럼 보인다. 이에 더해 기후 변화론자에 대한 합리적인 혹은 음모론적인 반대론의 대두와, 여러 이익집단들이 얽혀 논쟁이 혼탁해지면 어느 쪽을 따라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이에 저자인 호프 자런은 전문가로서 수집한 자료들을 토대로 구성된 논증을 제시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개..
레몬심리 저, 박영란 역,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갤리온, 2020(한국), 2019 1) 일반적으로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는, '심리'를 표방하는 책들은 대체로 가벼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만큼이나 그 책에 담긴 내용들은 대체로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법한, 다소 상투적인 표현들로 채워져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책은 내 인생에 있어 뭔가 전환점을 마련해주는 그런 책은 아닌 셈이다. 이 책이 많이 팔린 데에는 아주 매력적인 제목과 트렌디한 표지 그림이 아주 많은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2) 나는 이 책이 다소 뻔한 내용을 다루었다고 여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함부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은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