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보조 장치

기본권 발전의 역사 - 김영란 저,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본문

작품 감상/도서

기본권 발전의 역사 - 김영란 저,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Perihelion 2020. 11. 18. 17:00

 

김영란 저,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풀빛, 2020

 

 

저자 김영란 (사진 출처: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0606111818061#c2b)

1)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곧 '김영란법'으로도 유명한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법관 취임 당시 '젊은 여성 대법관'으로서 존재 그 자체로, 그리고 여러 판결들을 통해 기본권 보장을 위한 진보적 변화의 한 흐름을 담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법치주의 개념의 토대가 되는 대헌장을 승인하는 영국의 존 왕. James William Edmund Doyle, 〈John Signs the Great Charter〉, 1864
프랑스 혁명의 결과이자 기본권 역사에서 중요한 문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문. Jean-Jacques-François Le Barbier, 〈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 1789

 

 

2)

 기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누려야 할, 말 그대로 기본적인 권리다. 그러나 실제로 기본권이라고 하는 것이 널리 통용된 역사는 길지 않으며, 심지어 오늘날에도 기본권을 사회의 원리로 채택하지 않은 곳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기본권이 발달해온 역사를 영국의 대헌장,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선언서, 바이마르 헌법이라는 4가지 주요 주제를 놓고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대한민국에서 헌법이 변해온 역사를 언급한다.

 

차례

머리말
프롤로그 : 시공간을 넘나드는 헌법 여행

1장 영국의 대헌장, 헌법의 주춧돌이 되다
로빈 후드는 왜 등장했을까?
재판제도의 틀을 다진 헨리 2세
평민의 삶에는 관심 없는 왕족들의 권력 쟁탈전
대헌장이라는 종이 한 장의 의미

2장 프랑스 혁명, 헌법에 인권을 넣다
앙시앵 레짐과 혁명의 씨앗
삼부회와 바스티유 감옥 함락
프랑스 인권선언
공화정의 탄생
헌법의 과도기

3장 미국 독립선언서, 헌법에 살을 붙이다
영국의 미국 점령과 포카혼타스
자치운동에서 독립운동으로
독립선언서, 인권을 선언하다
미완의 헌법

4장 바이마르 헌법, 현대 헌법의 기틀이 되다
바이마르 헌법에 새겨진 로자 룩셈부르크
거울의 방에서 태어난 바이마르 공화국
가장 현대적인 헌법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평생 평화를 꿈꾼 케테 콜비츠

5장 대한민국, 헌법을 논의하다
광복과 신탁통치
헌법의 제정과 개정
1987년 6월의 유산

에필로그 : 경의, 정의, 숙고를 경험하다
참고문헌

 

 

프랑스 혁명의 본격화를 알린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 사건. Jean-Pierre Houël, 〈Prise de la Bastille〉, 1789

당시 재판은 어떻게 이루어졌는데요?
 법률에 적힌 대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결투로 유죄와 무죄를 가리던 재판도 있었고, 신의 판단을 따른답시고 위험한 명령을 내려서 살아남으면 무죄로 판단하기도 했지요. 예를 들어, 끓인 물이나 기름에 넣은 돌을 맨손으로 건지게 한 뒤 손을 붕대로 감고 풀지 못하게 했다가 3일 후에 풀었을 때 손이 깨끗이 나았으면 무죄, 고름이 생겨 더러우면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또 사지를 묶은 채 차가운 물구덩이에 던져 넣고 가라앉으면 무죄, 떠오르면 유죄로 판정하기도 했다고 해요.

그런 것도 재판이라고 할 수 있나요?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재판이지만 당신에는 신의(神意)재판, 신명재판이라고 불렀지요. 만일 유죄라면 신이 심판해 줄 것이라고 믿고 맡긴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다. (...)
(42쪽)

 

3)

 내가 기본권 교육의 수혜자라서 그런 것인지,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은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정도다. 결투를 통해 어느 쪽이 정의로운지 판가름하던가, 신체에 대한 학대 수준의 행위를 하여 무사한지를 보는 식이다. 중세에 대해 여러 오해나 편견이 해소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재판에 관한 면모에서만큼은 '암흑 시대'니 '미신적이고 주술적'이니 하는 표현들이 크게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계몽주의자들이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것들을 중시하고, 이성과 합리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에서부터 법과 정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것들을 정비하고자 했던 이유를 보다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겠다. 

 "~의 자유"와 같이 자유권이니 하는 것들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사람다운 삶'을 살 전망이 불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이 법에 의해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의 자의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 이하의 노예로 전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사회가 당시 중세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현실 재판이 신의재판, 신명재판으로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신의재판의 탈을 쓴 인간의 무지와 편견에 좌우되는 재판들이 많았다. 계몽주의자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말처럼, 신의재판은 영혼불별의 관점에서, 그러니까 육신의 죽음 이후의 신의 심판이나 최후의 심판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세계에서 인간의 판결에 신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오만한 일일 수 있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독립선언 현장. John Trumbull, 〈Declaration of Independence〉, 1819
독일의 정치혼란 와중에 살해된 카를 리프크네히트에 대한 추모. Käthe Kollwitz, 〈Gedenkblatt für Karl Liebnecht〉, 1919-1920

4)

 전통적인 맑시스트들은 프랑스 인권 선언에서 주창된 내용들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발리바르(Étienne Balibar, 1942-)의 비판이 보다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지배 이데올로기는 지배적이기 위해 피지배자들의 광범위한 인정을 받아야 하므로 이는 오히려 피지배자들의 것이다. 가령 프랑스 혁명에서, 부르주아들이 주창했던 개인의 자유, 평등, 박애라는 인간의 권리는 적어도 부르주아들만의 것만은 아니었다. 대중이 그 권리들이 납득할만한 것, 더 나아가 필요한 것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혁명이 광범위하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단지 부르주아가 앞장서서 주장했다는 이유로 이것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라며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스스로 검토해보아야 할 것이다.

 계몽주의의 시기, 근대에 그러한 사상들이 사상계에서 주류를 차지하였다고 해서 현실에서 그 원리가 일반화되었다고 가정해서는 곤란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표면적으로, 형식적으로 인정되는 곳에 살면서도 실질적으로 그것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며,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그러한 권리가 표면적, 형식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배 이데올로기, 곧 인간의 기본권과 헌법적인 가치의 실현은 아직도 우리의 분명한 과제다. '이데올로기적 반역', 즉 이를 실현하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

 

 

Jacques-Louis David, 〈The Death of Socrates〉, 178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