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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윤재에게만 아몬드가 없었을까 - 손원평 저, 『아몬드』 본문

작품 감상/도서

과연 윤재에게만 아몬드가 없었을까 - 손원평 저, 『아몬드』

Perihelion 2021. 1. 26. 16:47

 

손원평 저, 『아몬드』, 창비, 2017

 

가운데 Amygdala(편도체)가 보인다. (출처: https://nba.uth.tmc.edu/neuroscience/m/s4/chapter06.html)

 

1)

 감정표현불능증(알렉시티미아, alexithymia)은 뇌의 부위 중 편도체가 정상 크기보다 작을 때 발생하는 증상이다. 아몬드 모양의 이 부위가 두려움과 공포 등 정서기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편도체의 문제가 생기면 공포를 느끼지 않는 등 정서와 관련된 문제가 생기게 된다.

 

 

요새 즐겨 먹는 아몬드 제품


2)

 소설의 주인공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증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어머니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반응'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익히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묻지마 살인 사건에 휘말려 할머니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기약 없는 병상 생활을 하게 되었고, 주변의 도움 덕에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던 와중 뒤틀린 삶에 의해 왜곡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곤이를 만나게 되는데, 감정 표현의 불능과 왜곡된 감정의 과잉 표현이라는 두 기이한 만남이 서로를 변화하게 만든다.

 

 


3)

 분노, 두려움,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은 피하고 싶은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기능을 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감정표현불능증과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을 우리는 이상하게 여기며, 소설에서 윤재의 어머니 또한 그러한 자식의 '단점'을 알고 이를 보완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감정이 도덕적이고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감정을 느낄 줄 아는 자신이 윤재보다 낫다는 생각을 섣불리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 자체만이 아니라 감정을 '올바르게' 느끼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책의 초반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자의 분노 과잉, 방관만 하던 사람들의 두려움 과잉, 뒤틀린 곤이의 감정표현 등을 생각해보자. 혹은 이기적 본능과 욕망의 표현에 몰두하며, 그러한 감정을 고상한 용어로 포장하고 변명하기에 바쁜 현대인들이야말로 감정 표현의 불능자들이 아닌가? 혹은 자기 감정의 표현을 억압하고, 특정한 공감만을 강요하는 사회의 분위기야말로 현대의 뒤틀림 감정 상태를 조장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감정을 단순히 가지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되며, 이를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 부단히 훈련하고 노력해야 한다.

 

 


4)

 우리는 혹시 감정표현불능증을 비롯하여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단하는 질환을 지닌 사람과 그 가족들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죄인 취급을 하지는 않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은 단순히 의학에서 규정한 질환의 타이틀을 가진 사람만이 겪는 것이 아니며, 범죄를 저지르는 데에 있어 그러한 질환들은 필요조건도 아니고 충분조건도 아니다. 소설에서는 윤재의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그러한 정신적인 다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중에서 제시하는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과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라는 구절은 포기하지 않는 것의 위대함과 어려움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윤재가 차라리 로봇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면 작중 그런 취급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사람의 외형을 충실히 구현하여 겉모습만으로는 로봇인지를 알 수 없는 로봇을 만들었다고 치자. 그러한 로봇이 작중 윤재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상태일 때, 사람들이 윤재를 대하는 태도와 로봇을 대하는 태도는 같았을까 달랐을까? 윤재가 사람이라는 점을 알고, 로봇이 인공물임을 알 때와 모를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또한 궁금하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다운 대우는 받는다'거나 존엄성 있는 존재로 대우받기 위해서 감정 표현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타인이 특정한 상황에서 그에 '어울리는' 감정을 지닐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한 당연함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해 예측가능한 기대를 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적인 예절이나 행동양식이 보다 안정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어울리는 감정'이라는 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우리가 상기해야 하며, 그러한 '기대'로 인해 정상적인 인간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그 이외의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토대로 우리는 스스로의 반응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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