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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의 색깔부터 궁금한 이유 - 베벌리 나이두, 『차별의 기억(Out of Bounds: Stories of Conflict and Hope)』 본문
저 사람의 색깔부터 궁금한 이유 - 베벌리 나이두, 『차별의 기억(Out of Bounds: Stories of Conflict and Hope)』
Perihelion 2021. 1. 11. 18:37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차별의 기억』, 생각과 느낌, 2007
Beverley Naidoo, 『Out of Bounds: Stories of Conflict and Hope』, 2001
1)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nd),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라는 뜻이다. 동시에 유럽 이주민을 조상으로 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만든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살아있는 법률이었던 이 반인륜 정책들은, 국제사회에서 남아공을 배척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6인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했을 정도로 길고 악랄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주요 정책들이 1991년에 상당수 폐지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남북한 분단에서 소련 붕괴에 이르는 세월 동안 이어진 셈이다. (이 와중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남북한 문제는 언제 해결될 것인가?)
아프리카너(Afrikaner)
: 대항해시대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정착한 유럽계 이민자 후손으로, 주로 네덜란드계가 많다. '보어인(Boer)'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는데, 네덜란드어로 보어란 '농부' 혹은 이로부터 비롯된 성씨를 의미한다.
아프리칸스어(Afrikaans)
: 아프리카너가 사용하는 언어. 아프리카너가 주로 네덜란드계이므로 아프리칸스어는 네덜란드어와 가까우며, 게르만어파에 속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노벨상 수상자>
문학상
1991년 네이딘 고디머(Nadine Gordimer, 1923-2014):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작품에서 묘사
2003년 존 맥스웰 쿳시(John Maxwell Coetzee, 1940-): 아파르트헤이트의 모순과 허구성 비판
생리학·의학상
1951년 막스 타일러(Max Theiler, 1899-1972) - 황열병 연구
1979년 앨런 코맥(Allan McLeod Cormack, 1924-1998): CT(Computed Tomography, 컴퓨터단층촬영) 개발
2002년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 1927-1029): 유전학 연구로 AIDS 등 난치병 치료 연구에 기여
평화상
1960년 앨버트 루툴리(Albert Lutuli, 1898-1967):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1984년 데스몬드 투투(Desmond Mpilo Tutu, 1931-): 남아공 성공회 대주교,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장
1993년 프레데리크 빌렘 데 클레르크(Frederik Willem de Klerk, 1936-): 반아파르트헤이트 정부 설립, 대통령
1993년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2013):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 대통령
2)
베벌리 나이두의 이 책은 1948, 1955, 1960, 1976, 1985, 1995, 2000년을 각각의 시점으로 하여 그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청소년의 눈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초래한 현실을 보게 한다. 즐거움을 다하며 순수한 꿈을 만나야 할 시기에 이 아이들이 만난 것은 모멸과 굴종, 핍박이라는 현실이다. 그나마 어린 주인공 덕인지 잔인성이 덜해 청소년이 접하기에 무리가 없는 작품이라는 점이 다행이겠다.
3)
사람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다양하다. 사는 지역, 신체적 특징, 가족, 계층, 직업, 행동, 습관, 취향, 문화, 언어, 성격, 가치관, 종교 등... 아파르트헤이트와 같은 거대한 차별조치는 이러한 다양한 것들을 하나의 특성으로 환원시켜버린다. 누군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어떤 인종에 속하는가만이 최우선 고려 대상이 된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진정으로 무서운 점은 이러한 차별을 다룬 작품을 보는 독자로 하여금 아파르트헤이트적 시각을 무의식 중에 심어놓는다는 것이다. 각 챕터별로 등장인물의 그 어떤 점보다도 '흑인인가?', '백인인가?'를 먼저 구별하려는 심리를 스스로 발견한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연표>
1948
국민당(the National Party), 아파르트헤이트 공약 및 집권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아르피카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의 저항 시작
1949
인종간 혼인 금지법
1950
배덕법: 다른 인종과 성관계 금지
주민등록법: 인종정보 표시- '백인', '컬러드', '인도인', '반투'(흑인, 원주민)
반공법: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투쟁하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분류하여 탄압
집단지구법: 통행 제한령. 인종에 따른 구역 분리
1951
반투자치법: 흑인 분리 정부 규정, 남아공 흑인의 외국인화, 남아공에서 흑인의 시민 지위 박탈
불법거주금지법
건축원주노동자법 및 원주자징수법
1953
시설분리보존법: 공공편의시설에서의 인종 분리
반투교육법: 인종 분리에 따른 교육, 흑인 교육은 철저히 저급 노동을 위해서만 준비됨
1954
반투도시지구법
1956
광산노동법(인종차별적 고용)
1958
흑인자치정부촉진법
1959
반투투자법인법, 대학교육확장법
1961-4
아프리카민족회의의 지하 운동: 무력 저항 단체 활동
1967
천연자연이용법
1970
홈랜드 시민권법
1974
아프리칸스어 매개 법령, 넬슨 만델라, 종신형 선고
1967
미국, 남아공 제재 강화
1990
넬슨 만델라 석방, ANC 합법화
1994
최초의 민주선거에 의한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
1995
진실화해위원회 설립, 학교들이 모든 학생들에게 개방
1998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 제출 및 활동 종료
4)
One drop rule, 다른 인종의 피가 단 한방울이라도 섞이면 백인의 순수성을 '더럽힌' 것이 된다. 그렇기에 이들은 인종간 혼인 등을 금지하였고, 혼혈들(Coloureds)은 부도덕의 상징인 것처럼 주류로부터 매도 및 소외되었다. 이러한 인종주의는 그 자체로 옳지 못하며, 어설픈 우생학으로부터 규범을 도출하려는 자연주의의 오류이자, 심지어 그 토대인 인종적 지식조차 이미 붕괴된 것에 불과하다.
유전학 이론에 대한 우생학적 오해의 시대를 지나고, 오늘날의 유전학에서는 '순수한 혈통'이라는 것은 허구에 불과한 메시지로 취급받고 있다. 제 아무리 '순수 혈통'의 후손이라 자칭하는 자일지라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여러 유전자 그룹의 흔적이 자기 자신을 구성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인종적 구분이 단지 외형적인 특성, 곧 시각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서는 학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지라도, 이를 통해 인종간 우열을 나누려는 기준 자체가 대단히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무슨 근거로 우열을 나누는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보통 그러한 우열을 나누고자 하는 자는 보통 자신의 그룹을 가장 우월한 것으로 미리 상정해놓고, 그 그룹의 특성이 우월한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이는 그저 선결문제 해결의 오류(the fallacy of begging the question)를 범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모순에서 비롯된 법률은 범법을 유도하고, 그러한 규범은 필연적으로 위선을 조장한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주창자들은 인종차별적 순수 혈통론에 근거한 성도덕을 역설했으나, '남아공이 아닌 곳'으로 규정된 흑인 거주 구역 반투스탄(Bantustan) 혹은 홈랜드(homeland)에서 펼쳐진, 백인을 상대로 한 흑인의 성매매, 그리고 이로 인한 혼혈 사생아 문제를 초래했을 뿐이다. 인도 출신은 천대하면서 돈 많은 일본, 홍콩 등 돈 많은 동아시아 출신을 '명예 백인(honorary white)'으로 칭한 것은 자가당착적 아파르트헤이트의 일면에 불과하다.
5)
인종분리 정책은 혈연을 넘어 전방위적으로 적용되었다. 인종에 따라 거주지, 생활공간, 직업, 정치적 권리, 교육 등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모든 것이 분리된다. 심리적 차별과 물질적 격차를 영속화하기 위한 조치는 넬슨 만델라의 대통령 취임 이후 법적 폐기가 단행되었음에도 그 잔재가 남아 남아공 사회의 여전히 살아있는 흉터로서 사회적 통증을 일으키고 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노골적인 분리 정책이 시행되진 않지만, 은연중에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광범위한 분리가 '개인의 선택'이나 '수요와 공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우려스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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