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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가 무너져야 진정한 내가 찾아온다 -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2019 본문
허세가 무너져야 진정한 내가 찾아온다 -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2019
Perihelion 2021. 4. 23. 08:00
영화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2019
1)
뉴욕(New York)은 단순히 미국의 여러 도시들 중 하나 이상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맨해튼의 타임스 스퀘어로 대표되는 현대적인 도시의 전형적인 인상을 제공하며, 동시에 브로드웨이, 영화, 음악, 패션, 디자인 등 예술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미국 주류 WASP, 할렘의 흑인 문화, 브루클린의 유대인 및 다양한 이민자들의 도시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건축물과 유럽 풍의 건축물 등 다양하면서도 얼굴을 지닌 이 뉴욕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동경을 품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뉴욕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의 단면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예술에 대한 소양이 있는 주인공과 그가 걸어가는 올드한 매력의 뉴욕의 골목, 색감과 음악, 출연진의 역량이 비 내리는 날씨와 어우러지면서 특유의 분위기가 배가된다.
2)
예술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뉴욕의 벽돌들과 예술에 대한 사랑과 조예를 드러내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이 영화의 인상적인 요소다. 문학의 경향이 어떻고, 음악의 거장이 어떻고,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감독의 의도라느니 영화의 표현 기법이라느니 등의 말들이 하도 나와서 관련된 배경 지식이 부족한 외국 관객인 나에게는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모습이 이 영화의 매력, 그리고 캐릭터의 매력 요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객들은 그 화려한 외피 속의 공허함을 감지할 수 있다.
순수한 예술에 대해 논하지만 그 내면에는 공허함만이 가득하며, 이들의 고담준론(高談峻論)은 이러한 공허감에서 눈을 돌리기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개츠비'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채우지 못한 솔직한 사랑을 숨기고 있었고, '애슐리'(A-S-H-L-E-I-G-H)는 그저 자신의 단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다리로서 예술을 도구로 사용할 뿐이다. 이에 더해 에슐리의 하루를 거쳐간 3명의 중년 남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이들은 이러한 삶을 굉장히 능숙하게 이용하면서 살아온 것 같다.
현학적인 표현들은 그저 지적인 허세에 불과하며, 이러한 스노비즘을 극복하는 데에는 내면의 공허함을 인정하는 진정성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주인공 '개츠비'는 그러한 진정성의 단초를 영화적 우연성 속에서 발견하였고, 이를 통해 정신적 자유의 기쁨을 작게나마 맛보게 된 모양이다.
3)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특별한 걸작도 망작도 아니지만, 우디 앨런(Woody Allen)의 영화라는 이유로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동시에 받는 모양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2011) 등으로도 유명한 뉴요커(New Yorker) 영화 감독인 우디 앨런은 거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여성편력에 관한 구설수가 항상 따라다니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동 성추행을 비롯한 문제에 있어서 미투 운동의 대상에 올라 비판과 옹호를 동시에 받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다. 제3자 입장에서 그의 사생활에 대한 중립적 관점을 바탕으로 영화를 영화로만 보려고 해도, '젊은 여자를 노리는 중년의 남성과 이에 동조하는 젊은 여성'의 구도가 3중으로 겹겹이 나타날 때 편하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그 등장인물 중 하나의 직업이 영화감독인데, 또 하필이면 그 이름이 아동 성범죄로 도피 생활을 하는 실제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랑 비슷한 롤란 폴라드(Roland Pollard)라니? 이 사람도 영광과 동시에 기구한 인생을 살았지만... 일부러 찝찝함을 느끼라고 그렇게 의도한 건가 싶기도 하다. 어쩌면 미투 운동으로 인한 영화계 퇴출 분위기에 대해 작가나마 불만을 표한 걸까? 아니면 자신의 정신세계를 있는 그대로 투영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