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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에 대한 기괴하고 환상적인 탐색 -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ète sauvage, Divoká planeta, Fantastic Planet)》, 1973 본문

작품 감상/영화

존엄성에 대한 기괴하고 환상적인 탐색 -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ète sauvage, Divoká planeta, Fantastic Planet)》, 1973

Perihelion 2022. 9. 1. 19:00

 

영화 《판타스틱 플래닛(La Planète sauvage, Divoká planeta, Fantastic Planet)》, 1973

1)

 르네 랄루(Rene Laloux, 1929-2004), 롤랑 토포르(Roland Topor, 1938-1997)의 SF 애니메이션 영화로서, 스테판 울(Stefan Wul, 1922-2003)의 소설 『Oms en série』(1957)을 원작으로 한다. 평소 한국어, 영어, 일본어 외에 다른 언어 영상 매체를 접할 일이 많지는 않은데, 프랑스어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인상깊다. 특히 지도자 씬(maître Sinh)을 연기한 Jean Topart의 목소리가 상당히 듣기 좋았다.

 

 

 

2)

어느 먼 미래, 파란 몸에 붉은 눈을 한 거대 외계인 트라그인들(les draags, Traags)이 지배하는 이얌(Ygam) 행성에는 먼 행성 테라(Terra, 지구)에서 온 작은 종족, 바로 인간(homme)인 옴(Om)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옴이 트라그로부터 받는 취급은 벌레 취급 그 자체다. 어린 트라그들이 갖고 놀다가 죽어버리면 어쩔 수 없는, 때로는 귀여운 애완동물 정도로 흥미를 끄는, 그러나 야생에서 대량 번식하면서 불결하고 질병이나 옮기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소탕해야 하는 존재다.

 

 이러한 설정이나 트라그들이 옴들을 대하는 묘사는 지구에서 인간들이 다른 생물들을 대하는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동물을 대하는 인간의 행위를 다시 돌아보게 해준다. 더 나아가서는 동물에게 도덕적 권리가 있는 것인지, 심지어는 인간의 권리라는 것 자체가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지 않은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 그 누구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권리를 획득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라고 했던 제레미 벤담의 언급과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시리즈, 그리고 동물권(animal rights)에 관한 피터 싱어의 철학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다만 주의사항은 공리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동물권의 기준은 쾌락과 고통이지만, 옴의 권리 획득은 그 지성과 위협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편 트라그와 옴의 관계는 단순히 동물과 인간의 관계만을 넘어,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그러한 방식이 있음을 떠올리게 한다. 인류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에 있었던 노예제를 통해 인간이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해온 것이 인간이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일까? 오늘날에는 표면적으로 사라진 노예제와는 별개로, 은연중에 벌어지고 있는 인간이 인간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상황들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3)

 결국 평화와 공존은 위협에 직면해야만 가능할 것일까? 티바(Tiwa)가 테어(Terr)를 어루만지면서(petting) 학습하는 장면과 같은 구도가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데, 이때 옴이 아닌 다른 애완동물을 어루만지고 있는 트라그 어린이 모습 자체, 그리고 그 표정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4) 

 이 작품은 그 특유의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다. 펜으로 수작업하여 오랜 시간 만든 작품이라는 점이 영화 내내 드러나며, 무엇보다 겪어본 적 없는 생명체와 행성의 여러 모습들에 대한 기괴한 상상력 자체가 매우 인상적이다. 사이키델릭, 재즈, 펑크가 혼합된 사운드트랙은 극의 분위기를 이끄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얌의 기괴함을 한껏 더 잘 나타내는 장치가 된다.

 

 


5)

 트라그인들이 쓰는 그 학습장치... 나도 갖고 싶다. 그러한 장치를 가지고 있는 트라그 사회에서는 경쟁 시험이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텐데, 그런 사회를 지탱하는 물질적 기반과 사회 체계, 그리고 그 이면의 사회사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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