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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무시할 수 없는 동물의 고통 - 피터 싱어,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본문

작품 감상/도서

알면 무시할 수 없는 동물의 고통 - 피터 싱어,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Perihelion 2021. 4. 26. 17:00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동물 해방』, 연암서가, 2012(개정증보판)

Peter Singer, 『Animal Liberation』, 1975(최초 발행)

 

 

 

<차례>

2009년판 서문
1975년판 서문

제1장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성차별과 인종차별, 그리고 동물의 도덕적 지위
 동물이 느끼는 고통
 종차별 거부

제2장 연구를 위한 도구
 미국의 동물 실험 실태
 심리학 분야에서의 동물 실험
 실험자들의 의인주의 회피
 독극물을 이용한 동물 실험
 동물 실험을 재고해 보려는 징조
 의학 분야에서의 동물 실험
 다양한 실험
 어떻게 잔혹한 실험이 가능할 수 있는가?
 과학자들의 반응
 규제의 결여
 동물 실험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는 언제인가?
 동물 실험 대체

제3장 지금 공장식 농장에선…
 육계들의 운명
 과밀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산란 닭
 영리한 돼지 사육 방법
 식용 송아지가 살아가는 환경
 젖소의 운명
 육우가 살아가는 환경
 다섯 가지 기본적인 자유
 가축들의 고통과 자행되고 있는 관행들
 도축의 현장
 동물의 복리를 향한 발걸음

제4장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
 고기 생산의 비효율성과 환경 파괴
 무엇까지 먹을 수 있는가
 채식주의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의문에 대한 대답

제5장 인간의 지배
 기독교 이전의 사유 방식
 기독교의 사유 방식
 르네상스 시대
 계몽 시대와 그 이후

제6장 오늘날의 종차별주의
 인간이 우선이라는 가정
 종차별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가
 종차별주의 철학
 결론

더 읽을거리
주석
감사의 말
역자 후기

부록
피터 싱어가 말하는 피터 싱어
동물 해방 30년
찾아보기

 

Peter Albert David Singer(1946-),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Peter_Singer)

 

 

1)

 

이 책은 애완동물에 대해 쓴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사랑이 단순히 고양이를 어루만져 준다거나, 정원의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마음 편히 읽으라고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억압과 착취가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에서건 이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익에 대한 동등한 고려라는 기본적인 도덕 원리를 아무런 이유 없이 우리 종 구성원에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16쪽, 1975년판 서문)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 이데올로기(liberation ideology)를 알 필요가 있다. 오랜 세월 인류는 권력의 소수자(minority)들에 대한 지배와 억압 및 학대를 '섭리'의 일부로 여겨왔으나, 이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반발 운동들 또한 존재했다. 그 결과, 단지 인종이나 성별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우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없다는 흑인 해방(black liberation)과 여성 해방(feminism)의 취지만큼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단지 생물학적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의 논리가 있는데, 이 또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게 될까.

 

(출처: https://www.wired.com/2015/05/peter-singer-no-good-reason-keep-apes-prison/)

 

2)

 

평등은 이념이지 사실에 관한 단언이 아니다(Equality is moral idea, not assertion of fact). 두 사람간의 실질적인 능력의 차이는 그들의 필요와 이익에 대한 차등적인 배려를 정당화할 논리적인 이유가 될 수 없다. 인간 평등의 원리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이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prescription)이다.(33쪽. 제1장)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interests)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다.(37쪽, 제1장)
이 논증에 관한한, 인간 아닌 동물, 유아 그리고 정신 지체 장애인들은 동일한 범주에 속해 있다.(50쪽, 제1장)
쾌고 감수 능력이 있는 존재는 영리한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모두 동등한 배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동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213쪽, 제3장)

 

 피터 싱어가 보기에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존재는 기본적인 도덕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쾌고 감수 능력이 있는 동물을 단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태도는 종차별주의(speciesism)이며, 인종차별주의(racism)나 성차별주의(sexism)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즉 오늘날 사람들이 쾌락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동물들에게 행하고 있는 다양한 행위들이 매우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으면서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그러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으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출처: https://animaltestingpictures.com/envira/rabbit-animal-testing-experiments-images/)

 이로 인한 부당한 차별이나 학대의 목록에는 취미 범주의 사냥, 모피, 서커스, 투우, 동물원, 수족관, 애완 동물 산업에서 행해지는 일들(예컨대 유전병을 유발하는 브리딩 등) 등 많은 것들이 포함되지만, 피터 싱어는 이들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인 동물실험과 육식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것은 군사비의 규모가 어느 정도여야 한다고 생각하건, 미국의 납세자들이 "이것이 내가 납부한 세금으로 군이 행하길 원하는 바인가?"라고 자문해 보라는 것이다.(73쪽, 제2장)
그들은 동물의 고통을 부정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실험이 인간의 목적에 어느 정도 기여한다고 주장하려면 인간과 동물들 간의 유사성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87쪽, 제2장)
때문에 심리학 분야에서 연구자가 처하게 되는 주요 딜레마는 유달리 곤혹스럽다. 먼저 그들이 동물과 인간과 같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그들은 실험을 행할 이유가 없어진다. 다음으로 그들은 동물이 우리와 유사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인간에게 행할 경우 잔혹하다고 판단되는 실험을 동물에게 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심리학자는 두 가지 중에서 한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105쪽, 제2장)

 

(출처: http://crimecriminal.blogspot.com/2017/09/poultry-biz-no-more-battery-cages.html)

 

 과연 실제 행해지고 있는 동물실험과 육식이, 그 대상이 되는 동물들의 극심한 고통을 유발해야 할 정도로 절실한가? 인간에게 적용이 가능한지 아닌지도 불분명한 심리 실험을 하기 위해, 화장품의 안전성 실험을 위해 동물들을 동원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동물들이 극심한 고통 속에 빠져 살다가 폐기처분을 당한다. 축산업계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닭, 돼지, 소의 처우는 그야말로 일일이 묘사하기에 끔찍한 수준이다. 밝은 색깔의 소고기를 먹고자 하는 미식가들의 고상한 취향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송아지에게 벌어지는 일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관하여 피터 싱어가 제시하는 증거들은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외면하기가 매우 어렵다.

 

 


3)

 

물론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사용되는 약품을 동물에게 실험해 보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일한 종류의 실험이 화장품, 식용 색소, 그리고 바닥 광택제와 같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이루어지고 있다.(106쪽, 제2장)
이는 절대주의자의 원칙이 아니다 나는 뇌 장애가 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 만약 오직 한 사람만의 생명을 앗아가는 실험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생명을 실제로 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방법이 아니라면 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다른 방법이 없다면, 실험은 정당화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극히 드문 경우일 것이다. 이 장에서 서술한 어떠한 실험도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없다.(157쪽, 제2장)
나는 방사된 닭의 계란 생산에는 반대하지 않으며, 그 이유는 그곳에서 제시할 이유와 일관된다.(304쪽, 제4장)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연구자들이 식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그러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까지 먹어 온 것을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고통과 굶주림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면, 이때 우리는 상대적으로 적은 악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397쪽, 제6장)

 

 쾌고 감수 능력과 공리주의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그의 논의가 논리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측은지심에 호소하는 주장들보다 훨씬 일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강력하다. 동시에 공리주의자로서 유연성을 발휘하여 본인이 반대하는 행위들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반대를 표방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이는 종차별주의에 대한 반대가 급진적이고 극단화되어 대중들에게 외면받지 않도록 점진적인 실천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동물에 대한 강제적인 실험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강제적인 실험과 같지만, 우선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실험부터 그만두자, 우리가 동물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을 권리는 없지만, 우선 극식한 고통을 유발하는 공장식 사육부터 개선하자는 식이다. 우리가 쾌고 감수 능력이나 공리주의를 판단의 기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의 논의를 쉽게 배척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실천적인 유연성에 있지 않는가 싶다.

 

 

 


4)

 

엄밀한 논리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동정이라는 견지와 식도락적 견지에서 동물의 이익을 고려하는 데는 아무런 모순이 없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리고 심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인간 아닌 동물들을 배려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계속 먹을거리로 삼을 수는 없다.(278쪽, 제4장)
채식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불매운동(boycott)을 벌이는 것이다. (...) 종차별주의자들은 자신과 그다지 관계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하지만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막상 그들이 자신과 관계된 일에 접하게 될 때에는 자신들의 본성을 드러낸다.(282쪽, 제4장)

 

 다른 해방 이데올로기들이 그 취지의 확산과는 별개로 구체적인 정책적·개인적 실천 방안에 있어서 논쟁이 있듯이, 동물 해방의 경우도 그렇다. 사실 동물 해방이 흑인 해방이나 여성 해방과 본질적으로 동등하다면, 다른 해방 운동에서 행해진 시민 불복종 행위의 시급성이 동물 해방 운동에서도 인정되어야 한다. 동물해방전선(ALF)의 불법 침입 행위를 통해 비글에 대한 실험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동물원에서 바다거북을 꺼내서 바다에 풀어준 행위는 구출인가 절도인가? 동물 해방 운동이 새로운 상식이 될지 소수의 특이한 채식주의자들의 것으로 취급받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5)

 

하지만 그러한 생물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마찬가지로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도 없다.(302, 제4장)
그러한 저술가들(심지어 그 중에서 최고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마저도)은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는 다른 동물 고기를 먹는 깊숙이 뿌리박힌 습관을 깨버릴지 아니면 자신이 내린 도덕적 논의의 결과에 따라 살고 있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지의 선택의 시점에 이르러서는 논의를 멈추어 버린다.(352쪽, 제5장)
여기에서 핵심은 인간 아닌 동물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이 먹기 위해 살생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도덕적으로 고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379쪽, 제6장)

 

 나는 쾌락과 고통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본격적인 공리주의자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피터 싱어의 논리를 쉽게 배척할 수 없었다. 고기의 맛에 길들여진 나에게 있어 비건의 길은 그야말로 고행이며, 또 고기의 맛을 좋아하는 성향이 단순히 심신의 왜곡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식단에서 두부의 비중을 보다 늘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 그리고 소비자로서 공장식 사육의 철폐로 인한 고기 가격의 상승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 또한 되어 있다. 동물 복지를 보다 고려하여 생산되는 동물성 제품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리고 동시에 인공육 등 대체물들이 개발될 미래를 기대해볼만하지 않겠는가?

 

어떤 경우이건 '인간 우선'이라는 생각은 양립 불가능한 선택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보다는, 인간 혹은 인간 아닌 동물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변명하기 위해 사용된 경우가 많았다.(373쪽, 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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