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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도덕 철학적 투쟁 - 제이콥 M. 애펠,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WHO SAYS YOU'RE DAED?)』 본문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는 도덕 철학적 투쟁 - 제이콥 M. 애펠,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WHO SAYS YOU'RE DAED?)』
Perihelion 2021. 9. 20. 13:06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한빛비즈, 2021
Jacob M. Appel, 『WHO SAYS YOU'RE DAED?』, 2019
들어가며
1부 | 현장의 의사들이 고민하는 문제들
01 내가 아빠 딸이 아니라고요?
02 선생님이 치료한 환자들의 생존율은 얼마인가요?
03 환자가 상담 도중 고백한 범죄를 알려야 할까?
04 꼭 진료기록에 남겨야 하나요?
05 대통령의 건강에 비밀이?
06 진상 환자를 내보낼 수 있을까?
07 성적 환상도 신고 대상일까?
08 정신과 주치의가 환자와 잤다고?
09 살인자가 의사가 된다면?
10 의사가 고문 행위에 참여해도 될까?
11 건강 문제가 주가에 영향을 준다면?
12 공익을 위해 과거의 비윤리적 실험을 용인해도 될까?
2부 | 개인과 공공 사이의 문제들
13 아이를 낳지 않으면 돈을 준다고?
14 나를 강제로 중독 치료소에 보낸다고?
15 바이러스 보균자를 강제 격리해야 할까?
16 DNA 수사가 사생활 침해인가요?
17 의무 유전자 검사는 윤리에 어긋날까?
18 단식투쟁 수감자에게 강제 영양공급을 해도 될까?
19 아이에게 꼭 백신을 맞혀야 하나요?
20 범인의 다리에 증거가?
21 개발도상국 피험자를 대상으로 실험적인 연구를 진행해도 될까?
22 임상 연구가 실험 참여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줄까?
23 식수에 리튬을 넣으면 자살률이 내려가요?
24 왜 나한테 발병 위험을 알려주지 않았죠?
25 반은 쥐, 반은 사람?
26 악명 높은 독재자에게 치료를 제공하지 않아도 될까?
3부 | 현대의학이 마주한 문제들
27 입사 지원자에게 유전자 검사를 요구한다면?
28 백인 의사한테 진료받고 싶은데요?
29 어머니한테 암에 걸린 사실을 알리지 말아줄래요?
30 최고의 치료법은 기도거든요?
31 의료보험 사기를 눈감아줘도 될까?
32 환자 한 명에게 얼마나 많은 치료비를 써야 할까?
33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해야 할까?
34 값싼 모조약 판매는 불법일까?
35 흑인 정자는 받지 않는다고요?
36 남녀가 같은 병실을 써도 괜찮을까?
37 건강하지 않은 직원을 해고해도 될까?
38 제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릴까요?
39 생존율이 낮은 환자의 치료비를 지원하지 않아도 될까?
40 일 잘하게 도와주는 약 있나요?
41 정신치료 사전의향서를 무시해도 될까?
42 위험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보험을 제공해야 할까?
43 요양원 환자들의 성생활을 용인해도 될까?
4부 | 수술과 관련한 문제들
44 제 왼쪽 발을 잘라줄 수 있나요?
45 아이의 성장을 억제해야 할까?
46 우리 아이에게 할례를 해줄 수 있나요?
47 사망 확률 높은 장기 기증자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줘야 할까?
48 내가 동생에게 골수를 준다고요?
49 장기를 스타에게 먼저 줘야 할까?
50 돈을 주고 장기를 살 수 있다면?
51 사형수에게 심장을 이식받을 자격이 있을까?
52 침팬지의 심장을 이식하는 게 어떨까요?
53 머리만 옮길 수 없을까?
54 고환을 없애달라고요?
55 제 머리에 뿔을 달아줄 수 있나요?
56 쟤랑 평생 달라붙어 살기는 싫은데요?
5부 | 임신·출산에 얽힌 문제들
57 형을 살리려고 저를 낳았나요?
58 농아를 낳고 싶은데요?
59 배아의 소유주는 누구일까?
60 사생활 침해인가, 아동 보호인가?
61 신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지 말라고 했다고요?
62 훔친 정자로 임신을?
63 죽어도 제왕절개수술을 받지 않겠다고요?
64 태아는 누구 소유일까?
65 강제 불임시술을 허용해도 될까?
66 여자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고?
67 난관을 묶었는데 임신이라니요?
68 인간을 복제할 수 있을까?
69 네안데르탈인이 다시 살아난다면?
70 동성애자에게는 인공수정을 시술하지 않겠다고요?
6부 | 죽음을 둘러싼 문제들
71 무엇으로 죽음을 판단해야 할까?
72 고통에 신음하는 아이에게 모르핀을 투약해도 될까?
73 감세 혜택을 받기 위해 안락사를 시켜달라고요?
74 오빠가 에이즈에 걸린 적 있나요?
75 재난 상황에서 의사 조력 자살을 용인해도 될까?
76 죽은 약혼자의 정자를 달라고요?
77 가망 없어 보이는 환자에게서 인공호흡기를 떼어내야 할까?
78 시신이 바뀌었다고?
79 생명의 존엄함과 삶의 질을 어떻게 저울질할까?
출처 & 더 읽을거리
1)
사람들은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 뒤집어 생각하면 의료 현장에서 다루는 것들은 당사자의 삶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에 더해 끝을 모르고 발전하는 의료 기술은 이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생각하도록 일깨워주는 것을 넘어 우리에게 새로운 판단을 강요하다시피 한다.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분야 자체가 사람의 목숨, 혹은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신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의료 현장에서의 선택은 인간 본질의 문제를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의료 분야에서의 신기술은 인간 본질에 대한 우리의 철학적인 생각을 재검토하도록 끊임없이 요구하며, 온정적 간섭주의, 사생활, 개인의 자유와 같은 정치철학적 문제와 더불어 제한된 의료 자원과 같은 경제적인 문제, 개인과 사회의 관습 등 다양한 가치들이 얽혀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들을 우리 앞에 선보인다.
2)
보통 고등학교 정도의 교육과정에서는 낙태, 자살, 뇌사, 안락사, 배아, 인간 복제, 유전자 치료 정도를 다루고 있다. 각각의 문제들에는 그동안 많은 논쟁들이 축적되어 있어서 이러한 문제들을 접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이런 봤던 주제들을 매년 보고 또 보고 하다보면 주제들을 다소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의료 현장의 79가지 도덕 철학적 딜레마는 느슨해진 수업의 과정에 있어 신선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옛날에는 했던 내용 또 보고 또 보면 얼마나 지루할까 걱정도 했는데 그럴 걱정할 시간이 가끔은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쩌면 이러한 딜레마들을 책으로 온전하게 먼저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3)
기술의 발전과 그로 인한 시대적 여건 변화의 변화는 기존의 가족 관념과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지속적으로 도전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버지-어머니로부터의 부모-자식 관계는 그 경우의 수가 훨씬 복잡해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정자 제공자인가 아니면 호적상의 아버지인가? 어머니는 난자핵 제공자인가, 난자 미토콘드리아 제공자인가, 직접 배에 품은 대리모인가, 아니면 호적상의 어머니인가? 이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이 모두 다른 인물일 수 있다는 점은 당장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닐지라도, 장차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분쟁에 대비한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게끔 만든다.
더불어 인체를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은 의료적으로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되돌아올 수 없는 어떤 역사적인 선을 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난 예전부터 안구나 관절과 같이, 자체적으로는 재생을 기대할 수 없는 인체구조물들을 다시 만들어서 대체하는 기술이 발전한다면 얼마나 많은 삶의 질이 증진될 것인지 생각해왔다. 이에 관한 정보만 있다면 해당 기업이나 연구소에 투자를 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이 개별적인 눈이나 관절에서부터 시작해서, 손, 발, 심장, 신장 등등 온갖 장기를 다 구현할 수 있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이것이 인간 복제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인지 애매해진다.
4)
2019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에는 COVID-19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14) 바이러스 보균자를 강제 격리해야 할까?"를 통해 오늘날의 논쟁들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COVID-19의 경우 중증이 아닌 환자들이 많으며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격리에 대한 합당한 보상/배상의 문제, 어느 정도까지 수준으로 격리가 강제되는 것이 정당한가를 놓고 고민해야 할 지점이 여전히 많다. '장티푸스 메리'의 사례를 떠올리며, 감염된 것이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 공동체에 대해 얼마나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감염자/격리자에 대해 공동체가 모멸감을 표출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희생의 차원에서 존중하는 분위기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가 중요하게 된다.
5)
백인 의사에게만 진료를 받고 싶다고 하면 인종차별주의자라는 평판을 듣지만, 산부인과 진료를 여자 의사에게만 받고 싶다고 하면 성차별주의자라고 불리지 않는다. 실제로 산부인과 병원에서도 여자 의사가 진료를 한다는 점을 광고의 주된 내용으로 포함시키기도 한다. 특정한 종교적 신념 때문에 여자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는 경우라면? 단지 특정한 지역 출신 의사의 진료를 거부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어쩌면 취약한 근거를 가지고 형성된 선호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고, 그럼에도 그러한 사회적 편견에 가까운 것들을 용인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쟁점들은 근본적으로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자유주의, 자본주의를 채택하는 국가에서 환자가 의사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실상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환자가 의사를 '선택'하고 있지는 않다.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서 병원의 갈 경우, 의사는 병원에서 배정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며, 어떤 의사를 선택할 것인지 환자에게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도 내 건강을 담당할 의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건강이라는 결과에 불과하지만, 그 결과에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도움이 되거나 방해가 될만한 병원과 의사의 정보를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당 병원, 의사의 의료사고율은? 어떤 질병에 대한 진단에 좀 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가? 과잉진료을 하거나 약을 과도하게 처방하지는 않는가?
혹은 의사가 살인 전과를 지니고 있다면? 형사재판에서 사기 전과로 판결을 받지는 않았지만 유사한 건에 관하여 손해배상을 한 전력이 여럿 있다면? 이런 질문들은 의사의 의술에 대한 신뢰를 직접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해당 의사를 꺼리게 될만한 상식적인 이유가 되긴 할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병원 홈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의사의 약력으로는 알 수 없는 요소들이며, 병원과 의사에 대한 정보를 알고자 하는 환자, 곧 소비자들의 욕구와 수요를 불러일으킨다. 이런 정보들 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공개되는 것이 적절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소비자로서의 환자가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정보이며, 어느 정도를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로 여겨야 하는지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방법적 측면에서 볼 때, 특정한 정보를 공개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최근 요식업, 헬스장, 심지어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종으로 확대되는 중개앱들의 방식이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물론 최근 있었던 변호사협회의 조치를 떠올리면 병원과 의사에 대한 이런 중개앱이 출시되었을 경우 이런저런 갈등과 불편함이 정착 과정에서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6)
환자 한 명에게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을까?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대 이후의 사고방식은, 아무리 많은 돈이 든다 할지라도 인간의 생명보다 돈의 가치가 높게 책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 의료 자원의 배분은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에, 한 생명과 다른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해야 하는 곤란한 순간이 오기도 하고, 이에 따라 공리주의의 여러 복잡한 유형들이나 조건부 의무론 등 철학적인 장치들을 도입하기도 한다. 어쩌면 저런 철학적인 장치를 도입하는 상황 자체가 배부른 상황일지도 모른다. 지구 곳곳에서는 오늘날에도 흔하게, 자원 배분을 위해 인간의 생명이 쉽게 포기되고 마는 일들이 문명이 발달했다고 자부하는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7)
농아를 낳고 싶다, 아이의 성장을 억제하고 싶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요구라고 생각되지만, 이러한 요구를 하는 부모가 있다고 할 때, 이를 어떤 논리로 거부할 것인가? 아니 애초에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종교적 질서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 특히 창조된 '질서'를 강조하는 흐름 내에서는 이를 간단히 물리칠 수 있지만, 대립하는 여러 신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자유주의 국가의 현실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는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일견 직관적으로 옳지 않은 요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다는 것은 농아나 작은 키라는 특성 자체에 대해 우리가 '열등함'이라고 하는 관념을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어떤 특징에 대해 '열등함'을 상정하지 않고서는 장애를 지닌 이들이나 작은 키, 심지어는 머리카락이 영구적으로 빠지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예의나 복지 제도의 기반을 세우기가 어렵게 된다. 전혀 열등하지도 문제가 되지도 않는 것에 우리가 왜 조심스러움을 느껴야 하고 복지 예산을 지출해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열등성'이라는 특성을 가진 사람이 그 자체로 열등하지 않으며, 모멸이나 멸시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도록 사회적 주의를 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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