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보조 장치
순수한 예술가의 기록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1~2 본문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신성림 옮기고 엮음, 위즈덤 하우스, 1999
『반 고흐, 영혼의 편지2』, 박은영 옮김, 2008
1)
빈센트 빌럼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는 네덜란드 출생의, 「별이 빛나는 밤」, 「자화상」, 「가셰 박사의 초상」, 「해바라기」, 「사이프러스 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 여러 명작들로 알려진 화가이다. 그는 살면서 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는데, 1권에서는 동생이자 평생의 후원자, 지지자인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를, 2권에서는 친구였으나 견해의 차이로 인해 결별하게 된 라파르트에게 보내는 편지를 위주로 편집되어 있다. 이를 통해 고흐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인간 고흐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2)
지금은 유명한 화가이자 회화의 아이콘과 같은 이미지로서 그의 작품이 곳곳에서 활용되지만, 생전의 그는 특유의 괴퍅함 탓인지 눈총과 미움, 멸시와 냉대를 받으며 살았다. 깔끔하지 못한 행색에서 기인하는 비호감 외모, 고집과 타협하지 않는 성격, 경제적 무능력에다가 정신질환까지... 온갖 이유로 부모로부터, 친척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미움을 받으며 살았고, 이성관계에서 계속된 좌절을 겪었다.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을 인정과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이기에, 그의 상황은 그에게 더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1권 14쪽, 1879년 10월 15일)
"본의 아니게 쓸모 없는 사람들이란 바로 새장에 갇힌 새와 비슷하다. 그들은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끔찍한, 정말이지 끔찍한 새장에 갇혀 있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1권 25쪽, 1880년 7월)
"모베는 내가 "나는 예술가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취소할 마음이 없다. 왜냐하면 나에게 그 말은 무엇인가를 온전하게 찾아낼 때까지 늘 노력하는 걸 의미하거든."(1권 52쪽, 1882년 5월 3~12일)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 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추겠다. 조만간에 좀 더 흡족할 만한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1권 63쪽, 1882년 7월 21일)
3)
하지만 그의 강퍅함을 사회적 부적응으로 매도하기보다는 예술적 진지함으로 바라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27세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스스로 말하는 바와 같이 그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생명을 걸었다." 그는 예술학교와 아카데미즘 미술을 타성적으로 따르지 않았다. 미술만이 아니라 문학 등 다른 예술가들의 명작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이를 색채와 자연, 현실에 대한 나름의 시선으로 소화하여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다. 예술 자체에 대한 진정성으로 인해 그는 아마도 현대적인 예술가의 낭만적인 전형인 것 같다. 붓의 흐름이 느껴지는 특유의 굵은 형태와 강렬한 색상을 보다보면 자연을 보는 내 시선도 미묘하게 '고흐화'되는 것 같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되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1권 64쪽, 1882년 7월 21일)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것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 야망은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왔고, 열정이 아니라 평온한 느낌에 기반을 두고 있다."(1권 64쪽, 1882년 7월 21일)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1권 68쪽, 1882년 7월)
"무엇보다 내가 돈 버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그 목적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지름길이 아니겠니. 참되고 가치 있는 작품을 그리는 게 가장 기본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되려면 작품이 팔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작업할 것이 아니라, 작품에 대한 정말 훌륭한 어떤 것이 들어 있어야 할 테고,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정직한 탐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1권 79-80쪽, 1882년 8월 20일)
"위대한 일이란 그저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속되는 작은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서 이루어진다."(1권 93쪽, 1882년 10월 22일)
"아버지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의식적으로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가 크고, 털이 많으며, 집 안에 지저분한 발로 드나들 게 분명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는 걸 꺼려 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걸리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1권 105쪽, 1882년 12월 15일)
4)
이 책 덕분에 고흐의 습작에서부터 말년 명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편지에서 꾸준히 말하는 바와 같이, 그는 돈에 쪼들리면서도 그림 연습 자체를 멈추지 않았다. 역시 천재는 대표작을 통대 강한 인상을 주며 기억에 남지만, 그 이면에는 부단한 정진의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소 그림을 보면서 문득 이중섭(1916-1956)이 떠올랐다. 거친 붓놀림과 역동적인 이미지, 일상적이고 토속적인 소재를 사용하며, 심지어 인생의 말년이 비참했다는 점에서 둘을 비교하게 될 수밖에 없는가보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감상적이고 나약하게 보이는 농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대상을 찾겠지. 그러나 길게 봤을 때는 농부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게 그리는 것보다, 그들 특유의 거친 속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1권 121-122쪽, 1885년 4월 30일)
"아카데미의 인물화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잘 구성되어 있다. 더 이상 고칠 곳도 없고, 실수 하나 없이 매끄럽게 그려졌지. 그러니 '그 이상 더 잘할 수 없다'는 점은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런 그림은 우리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끔 이끌어주지 못한다."(1권 129쪽, 1885년 7월)
"우리는 삶 전체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삶의 한 귀퉁이밖에 알 수 없는 것일까?
죽어서 묻혀버린 화가들은 그 뒷세대에 자신의 작품으로 말을 건다."(1권 189쪽, 1888년 6월)
"나 역시 예술가의 광기에 감염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바로 거기에서 생겨나는 해독제와 위안물이야말로 조금의 선한 의지와 함께 충분한 보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1권 236쪽, 1889년 1월 28일)
"이곳 사람들이 그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다소 미신적인 생각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슬프게 한다. 사실 그 말은 꽤나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1권 279쪽, 1889년 12월)
"부탁인데 오리에 씨에게 더 이상 내 그림에 대한 글을 쓰지 말아달라고 전해다오. 그는 나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게다가 난 너무도 깊은 슬픔에 빠져 있어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 기분을 전환시켜주지만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떠들어대는 걸 듣는 일은 그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1권 291쪽, 1890년 4월 29일)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그런 건 좋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다."(1권 306쪽, 1890년 7월 24일 이전)
5)
지금 이 순간에도 회화적 노력을 기울이는 많은 청소년들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미대 입시'를 향해 달려가는 이들은 고흐와 같은 진정성을 가지고 '예술가'가 되는 중일까 아니면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의 관점과 같이 '기능인'이 되는 중일까? 물론 양자가 어떤 옳고 그름을 전제하는 것도 아니며, 둘 사이의 구분 또한 불분명하지만, 예술 분야를 향해 달려가는 인재들이 스스로의 예술관을 정립하기 위해 끝없는 고민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쉽게 말해 나는 첫째 부류의 상처 입히는 정부들을 진부함에 길들이는 예술학교에, 둘째 부류의 현학적인 정부들을 아카데미에 비유하는 걸세.
이 두 부류의 여성들 외에, 세상에는 다행히도 자연과 현실이라는 이름의 여성들이 있네. 하지만 그들 가운데 하나라도 사로잡으려면 수많은 내적 번민을 대가로 바쳐야 하지. 그녀들은 ―더도 덜도 아닌― 우리의 마음, 영혼, 지성 그리고 우리 안에 숨쉬는 모든 사랑을 요구하네 물론 그녀들 역시 자신의 전부를 바치지."(2권 54-55쪽, 1881년 9월 12일)
"나 역시 예술가들과 자주 섞여 있을 때 무력한, 무엇보다도 예술가로서 무력한 자신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하네."(2권 113쪽, 날짜 미상)
"나는 유행이나 유파에 개의치 않고 고집스럽게 내 길을 걸어갈 걸세. 악수를 청하며."(2권 118쪽, 1882년 11월 1일)
"작년에 병이 났을 때, 나는 의사의 진단을 비웃었었네. 그의 충고가 틀려서도, 그보다 내가 자신을 더 잘 안다고 고집해서도 아니네. 그건 바로 "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살고 있지 육체의 건강을 지키려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는 생각 때문이었지."(2권 167쪽, 날짜 미상)
"많은 프랑스어와 영어 책들은 너무도 인상적이고 전문적인 방식으로 그 시대를 묘사하고 있어 쉽고도 명확하게 당시의 일들을 상상하게 하네. (...) 『레미제라블』은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속에서도 내가 찾고자 하는 바를 발견하게 되네. 즉, 거기 묘사된 예전의 모습들은 내 할아버지나 좀더 가깝게는 내 아버지의 시대를 상상하도록 자극하지."(2권 180-181쪽, 1883년 5월)
"모욕을 참고 견디는 일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웬만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네."(2권 241쪽, 1885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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