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보조 장치
선거가 이끄는 한국사, 한국사 속 선거 - 김현성, 『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 본문
김현성 지음, 『선거로 읽는 한국 정치사』, 웅진지식하우스, 2021
1)
한국 정치사는 선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역사는 1948년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시작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선거 제도의 변화와 함께 굴곡을 겪어왔다. 이 책은 그러한 변화를 당시 있었던 이야기로 서술하는 일종의 교양 역사책이다. 굵직한 시기별로 챕터를 묶어 그 시기별로 포함된 선거가 어떤 배경을 지니고 실시되었는지, 어떤 전개와 영향을 초래했는지를 서술한다. 챕터별 부록에는 우리 선거에 관련된 용어 설명, 기록, 투표용지나 투표함 등 소소한 지식을 전해준다.
2)
일반적인 서술 논조는 중립적인 서술을 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책의 출판 시기가 2021년 7월이라 그런지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의 압승으로 끝난 2020년 21대 총선까지 반영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노무현 정부 출범 과정에서의 상세한 드라마 서술이 존재하는 등 범민주진영의 일반적인 시선이 주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을 수 있는데, 국민의 힘의 승리로 끝난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와 2022년 3월 대선, 6월 지방선거가 반영되었다면 어떤 서술이 있었을지가 궁금하다.
3)
이미 지나간 역사의 원인을 결과론적으로 파헤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동시에 결과의 틀에 맞추어 역사를 해석하게 한다. 그렇기에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했던 분석과 예측을 기록하고, 이후의 결과와 비교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최근에 끝난 20대 대선이 이런 결과일 것이라고 1년 전에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무엇보다 1%미만의 차이로 갈린 이번 선거에서는 이긴 측의 집단적인 목소리와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그렇지 못한 측의 집단적인 목소리와 감정이 어떤 것을 담고 있었는지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이를 아우르지 않고는 국민 통합이란 먼 꿈이기만 할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사실상 양당제에 가까운 현실에서, 개개인이 지닌 다양한 정체성과 정치적 입장이 조합된 온갖 경우의 수들을 양당의 현실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복잡다단한 정치적 논제들에 있어 항상 특정 당의 입장만 따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4)
우리 역사에서 선거는 권력의 입맛을 위해 왜곡되어 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선거 제도가 존속했기 때문에 부정의한 절차나 방식으로 유지하고자 했던 권력을 보다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저항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선거 제도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거가 정치적 구성원들의 통합보다는 분열을 촉진하지는 않는지 주의해야 할 것이다. 선거 제도 자체는 그나마 갈등을 평화적으로 '판정'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그러나 광복 시기 분단의 현실을 선거제도를 통해 평화적인 이념경쟁으로 유도해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근대적인 '국민 만들기'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도 억압과 유혈을 초래했고, 이념적인 영역에서도 이는 다를 바가 없다. 분단 자체가 민족 내 갈등을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안이었나 싶다가도, 막상 한국전쟁을 했다는 점에서는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5)
정권교체를 꾸준히 하면서 특정 정치 세력에 무조건적인 힘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의 역동성과 가능성을 엿볼 수 있지만, 동시에 선거 패배가 곧 수사 및 감옥행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잘못을 했으면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나, 정치 권력이 꼭 타락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특히나 이번 선거에서는 선거 패배는 곧 빠른 수사, 승리는 좀 더 지연된 수사를 받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한 많은 고민과 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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