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보조 장치
이미 삶에 녹아든 또 다른 경험 세계 - 김상균, 신병호,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 본문
김상균, 신병호 지음,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 베가북스, 2021
1)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화두 중 하나가 '메타버스(metaverse)'다. 이는 초월(meta)과 우주(universe)의 합성어로, "나를 대변하는 아바타가 생산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새로운 디지털 기구"라고 한다.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AR),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등을 그 분류로 삼는다. 여기에 'SPOCE 모델'에 따라 연속성(Seamlessness), 실재감(Presence), 상호운영성(Interoperability), 동시성(Concurrence), 경제 흐름(Economy Flow)을 두루 갖춰야 메타버스로 여겨진다. 메타버스 플랫폼은 흔히 아는 비디오게임만이 아니라, 현실의 음식점들을 반영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배달어플, 검색 플랫폼의 라이프로깅 등 이미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구현되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이에 더해 건축이나 조선을 비롯한 생산공정에서 메타버스를 도입하여 작업을 효율화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이 이미 산업 현장에서 도입되고 있으니 메타버스는 앞으로도 널리 활용될 것으로 여겨진다.
2)
하지만 메타버스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강조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가 하는 의혹도 있다. 증강현실, 라이프로깅, 거울세계, 가상현실은 이미 활용되어 우리 일상에 익숙한 것이라 그다지 새롭지 않은데, 그럼에도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서 이를 재정의하고 홍보하는 것이 새로운 투자처로 사람들의 관심과 자금을 유도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책에서 메타버스와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소개해주어 산업의 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는 영역이 많음을 알게 된 점은 좋았으나, 관련 기업들의 가치 변화나 ETF를 소개해주는 부분이 그러한 느낌을 받게 한다.
3)
그럼에도 메타버스로 묶이는 산업 영역이 장기적으로 확장될 것이라는 예상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다만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윤리적 문제들을 등한시해선 곤란하다. 메타버스로 구현된 또 다른 자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이에 따라 데이터화된 나의 삶과 죽음 및 인간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더해 메타버스를 누리는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에서 발생하는 격차가 인간에 대한 대우에 있어서의 격차로 전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4)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 상당수 업무가 재택으로 전환되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한적한 자연 근처에 살면서 교통체증이나 도시의 과밀화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메타버스를 활용한 기술이 있음에도, 인프라의 문제와 더불어 보상과 정의의 문제가 그러한 예상을 빗나가게 하고 있다. 내가 일을 하고 그에 합당한 보수로 임금을 받아간다. 내가 시험을 봐서 그 실력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직접 대면하지 않는데 일을 했다고 인정받고 보수를 받아가는 저 사람이 실제로 그 사람임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에 더해 미래에는 딥페이크 기술의 발달로 인한 가짜 정보, 허위, 도용의 우려가 심화됨에 따라 수능을 비롯하여 신원확인이 중요한 시험 같은 경우에 비대면 도입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보상과 정의는 인격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 인격성은 대체할 수 없는 육체에 의존하는 것이니, 곧 인간은 근본적으로 육체에 얽매인 존재다. 그렇기에 가상현실 등을 활용한 재택업무나 원격수업 경험이 주는 현실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5)
그래서 시각만이 아니라 신경망 전체를 연결하여 육체적인 모든 경험을 구현해주는 시점이 온다면, 그땐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비롯한 메타버스 전체에 큰 변곡점을 긋게 될 것이다. 그런 시기가 오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아미노산 등으로 이루어진 육체와 디지털 정보로 이루어진 메타버스에서의 육체 중 어디에 더 무게를 두게 될까? 특이점을 넘어선 이후에는 육체에 종속된 인격성과 그로 인한 심리적 제약을 초월할지도, 혹은 법인격으로서의 AI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져 이들에게 권리를 부여해야 할지도 모른다.
6)
인간의 전 생애가 라이프로깅으로 기록되면 어떨까? 당연히 개인정보 침해 등이 문제가 되겠지만, 적어도 채용이나 정치적 임용 혹은 선거에 있어 활용될 여지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다는 현실 자체가 좀 그렇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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