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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극복해야 할 무게가 있다. -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2010 본문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2010
1)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중대한 국가적 위기의 시기를 앞두고 영국의 왕이 된 조지 6세. 심각한 말더듬이 증세를 가진 그가 언어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 공포를 극복하고 우정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아버지인 조지 5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형제 중 형은 사교적이고 자신감이 있으며 패션센스도 훌륭하지만, 왕실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다닌다. 미국 출신 이혼녀, 심지어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질 않나, 왕실의 품위나 규율 등에 대해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생은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편이나, 지나치게 소심하고 특히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조지 5세의 걱정이 말끔히 해소되기 전에 그는 서거하고, 형은 에드워드 8세로 즉위하나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다. 역사의 격동기에 형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은 조지 6세는 이 난국에 직면하여 이전의 나약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2)
조지 6세가 왕이 되기 전에 그의 부인인 엘리자베스가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찾아와서 하는 대화가 인상적이다.
"제 남편은 연설할 일이 많아요."
라이오넬 "그럼 직업을 바꿔야죠."
엘리자베스 "그럴 수 없어요."
라이오넬 "노예계약인가요?"(Indentured servitude?)
엘리자베스 "뭐 그런 거죠."(Something of that nature.)
인간에게 연설을 해야 하는 본성(nature)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국에서 왕위계승서열을 가지고 태어난(natural) 것은 조지 6세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자 속박과도 같이 여겨졌을 것이다. 그래서 위의 두 명의 대사가 농담처럼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루소가 말한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와 같이, 조지 6세는 자신을 짓누르는 책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고, 이를 인간승리의 과정으로 이 영화는 묘사하고 있다.
"Man is born free, but everywhere he is in chains"
(original French: l'homme est né libre, et partout il est dans les fers)
- Jean-Jacques Rousseau, 『The Social Contract(Du contrat social)』, 1762
이에 반해 그의 형인 에드워드 8세는 아버지 조지 5세의 뒤를 이어 영국의 국왕이 되나, 의회가 반대한 자신의 결혼을 이루기 위해 동생에게 양위한다. 위험한 시대에 국왕으로서의 책임을 외면하고 미국 출신의, 그것도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떠난 무책임한 왕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지워진, 그러나 자신의 성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쇠사슬로부터 벗어나 자유인이 되기를 소망한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무거운 책임감의 짐을 지고 왕으로서의 임무를 이행하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I have found it impossible to carry the heavy burden of responsibility and to discharge my duties as king as I would wish to do without the help and support of the woman I love."
- 에드워드 8세(Edward VIII)의 퇴임연설 중에서
이 형제 각각에 대한 상반된 평가 중에 어떤 것들을 선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삶의 초기 조건들은 어디까지나 주어진 것이다. 심지어 주체적으로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고 해서 자신의 의지 밖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여러 요소들에서 완전히 독립적일 수는 없다. 한 명의 사람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때에는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면서 사는 것이 적절할 때가 있고, 주어진 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면서 저항하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다. 이는 살아가면서 겪는 환경과 나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떠올리게 한다.
3)
윈스턴 처칠 역을 티모시 스폴(Timothy Spall)이 맡았는데, 《댐드 유나이티드(The Damned United)》에서 피터 테일러 역으로 먼저 봤기에 반가웠다. 그냥 이 사람이 친근한 이미지인 것 같기도 하다.(알고 보니 두 영화의 감독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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