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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금융? Just kidding. - 영화 《빅 쇼트(The Big Short)》, 2015 본문

작품 감상/영화

정의로운 금융? Just kidding. - 영화 《빅 쇼트(The Big Short)》, 2015

Perihelion 2020. 3. 5. 18:08

 

 

영화 《빅 쇼트(The Big Short)》, 2015

 

 

1)

 세계를 강타했던 2007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가 발생한지도 벌써 10년이 넘게 흘렀다. 세계적인 경제위기야 처음이 아니고, 시장실패라는 용어도 익숙하기 때문에 뉴스에서 보는 이 사태 자체가 충격파를 날릴 지언정 어떤 마음의 울림을 주지는 않는다. 주식 시장이 폭락했고, 많은 회사들이 망했으며, 경제 성장률의 둔화를 초래했다. 아무튼 세계적으로 '큰 숫자'만큼 손해를 본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파악하기에 숫자만큼 흥미롭고 객관적인 것이 없다 할지라도, 숫자만으로 세상을 파악한다면 세상의 단면만을 보는 것이다. 이 영화는 금융위기 직전에 금융 붕괴를 예상하고 숨가쁘게 움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들려주고자 한다. 이를 통해 숫자에 있어서 고도로 합리적인(rational) 사람들을 통해 고도로 불합리한(unreasonable) 것들을 보게 된다.

 

 

 

 

2)

우리가 옳다면, 사람들은 집을 잃고 직장을 잃어! 은퇴 자금도 연금도 잃어! 내가 왜 은행권을 혐오하는지 알아? 사람을 숫자로 격하시켜. 실업률이 1% 증가하면 4만명이 죽는 거 알아?

 If we’re right, people lose homes. People lose jobs! People lose retirement savings, people lose pensions. You know what I hate about fucking banking? It reduces people to numbers. Here’s a number, every one percent unemployment goes up, forty thousand people die, did you know that? 

 실업이라는 것은 경제뉴스에서 "실업률이 1% 증가했습니다."라는 한 마디로 끝낼 수 있는 무미건조한 것이 전혀 아니다. 증가하는 실업이 의미하는 것은 삶의 기반이 무너진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넘어서 불안정한 가정,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를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람을 단순히 숫자로만 파악하면 숫자로 계량하기 어려운 것들은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사람의 고통과 행복, 안전에 대한 욕구, 소속감 등을 숫자가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는다. 

 

 

3)

 그 후 몇 년 동안, 은행 및 신용평가사 임원 수백 명이 감옥으로 갔죠. 증권거래위원회는 완전히 재정비를 했고, 의회는 대형 은행을 분해했고 모기지 및 파생상품 산업을 규제할 수밖에 없었어요.

뻥입니다!
 은행들은 국민이 준 돈(세금)을 받아서 스스로에게 거액의 보너스를 주는 데에 썼고, 의회에 로비를 해서 개혁을 막았죠. 그리고 이민자와 가난한 사람들, 심지어 교사들까지 탓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감옥에 간 은행원은 단 하나였죠.

 In the years that followed, hundreds of bankers and rating-agency executives went to jail. The SEC was completely overhauled, and Congress had no choice but to break up the big banks and regulate the mortgage and derivative industries.
 Just kidding! Banks took the money the American people gave them, and used it to pay themselves huge bonuses, and lobby the Congress to kill big reform. And then they blamed immigrants and poor people, and this time even teachers! And when all was said and done, only one single banker went to jail.

 금융위기 직후 사람들은 이러한 비도덕적 작태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고,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외치며 그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그 분노에 합당한 조치가 있었는가? 그러니까 월가는 점령되었는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권선징악, 사필귀정을 원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그건 바람일 뿐이고 그것이 현실화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오죽하면 칸트는 도덕의 완성을 위해 영혼의 불멸을 요청하기까지 했을까.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에서 향락과 자신감을 남기고, 이 영화에서 줄줄이 감옥에 '안' 가는 결말을 합치면 아주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이 리스크면 하이 리턴이어야 하는데, 왜 누군가에게는 리스크의 값이 0에 수렴하고, 왜 누군가에게는 리스크의 값이 이토록 커야 하는 걸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을 것임에도 결과적으로는 엄한 사람들만 고통을 분담하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4)

 이 영화는 어려운 금융 용어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알찬 편집과 관람자에게 직접 말을 건내는 방식, 그리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력으로 인해 상당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일침을 넣는 대사를 할 때에는 그 모습이 묘하게 《노예 12년》에서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목소리와 저런 말투로 일침을 넣으니 멋있을 수밖에. 괴짜스러운 전문가의 모습을 풍기는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는 《포드v페라리》에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얼굴을 아는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니 그런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재밌다. 아직 스티브 카렐의 다른 영화는 못 봤지만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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