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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의 붕괴는 곧 인간의 붕괴 - 영화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 본문
영화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
1)
이 영화는 2002년에 나온 《무간도(Infernal Affairs, 無間道)》를 원작으로 하는, 미국판 무간도라 할 수 있다. 느와르 답게 먼저 봤던 한국 영화 《신세계》(2013)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무간도》 또한 그렇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신세계》에서는 이런 장면으로 나왔었지!'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유사한 상황 설정이나 장면들을 차용(오마주)하면서도 영화마다의 색깔을 잃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간 순서
2002 무간도(Infernal Affairs, 無間道)
2003 무간도2: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無間道II)
2003 무간도3: 종극무간(Infernal Affairs III, 無間道 III)
2006 디파티드(The Departed)
2013 신세계
2)
조폭미화물 특유의 역한 냄새가 걱정되는 사람이라면 안심하고 이 영화를 봐도 된다. 대신 잭 니콜슨의 연기력 덕분인지 악당이 풍기는 악취가 대단한데, 어쩜 이렇게 역겹고 더럽고 밉고 얄미울 수 있을까 싶다. 보는 내내 빌리나 콜린이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내가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신세계나 야인시대가 조폭미화스러운 냄새를 풍기면서도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마치 간짬뽕에 치즈를 넣은 것마냥, 미화물의 냄새를 다른 요소들로 중화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3)
핵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정체성'이다. 나라는 존재는 내 주변에 있는 것들에 의해 규정된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경찰, 범죄자, 첩보원, 환자, 의사, 애인 … '나'를 다른 것들과 구분짓고 내면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정체성이라면, 이 영화에서는 정체성의 근간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정체성의 붕괴가 곧 인간의 붕괴임을 보여준다.
결국 던져진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 《신세계》에서는 형재애라는 재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모습이 드러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낭만적 멋짐이 없는 리얼리즘으로 전개된다. 뭔가 멋짐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에게 느낀 것일 수 있다.
4)
The departed, 말 그대로 떠나간 자, 죽은 자이다. 경찰로서의 나, 조폭 하수인으로서의 나는 죽었지만, 제대로 죽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에 한 발씩 걸쳐 있는 듯한 불안한 모양이 드러난다. 이 영화 제목으로 Rat을 선정했어도 무난했을 것 같다. 그야말로 '쥐새끼처럼 숨어들어가 있는 자', '쥐새끼마냥 비열한 녀석'들의 군상이 충분히 등장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기어다니는 쥐를 통해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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