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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The Post'인 이유 -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2017

Perihelion 2020. 3. 23. 16:42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2017


1)

 성과가 불분명한 베트남 전쟁이 기약 없이 진행되던 와중 미 국방부 장관 주도로 작성된 보고서인 <펜타곤 페이퍼>가 언론에 유출되었다. 이를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를 하고, 이를 닉슨 정권이 저지하고자 한다. 영화는 <펜타곤 페이퍼> 유출로부터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워싱턴 포스트>의 시각에서 그려내고 있다.

 

 

 



2)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의 안보 사이의 대립은 중요한 사안이다. 21세기에는 '테러와의 전쟁'이나 '위키리크스(WikiLeaks) 폭로' 등 관련된 사안마다 어느 것이 중요하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이러한 논쟁은 국민의 의사결정을 정치의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국민에게 의사결정의 힘이 없는 국가라면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형법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통해 범죄의 입증책임을 기소하는 자에게 두어 형법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를 어렵게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공적인 영역에서 정보의 편향은 이념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폐해를 초래할 위험이 있으므로, 숨기고 싶을 권리와 알고 싶을 권리가 대립할 때 정보를 차단하고자 하는 측이 그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수정헌법 1조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여 민주주의의 핵심 역할을 이행하도록 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피치자를 섬겨야 한다. (In the First Amendment the founding fathers gave the free press the protection it must have to fulfill its essential role in our democracy. The press was to serve the governed, not the governors.)"
- 뉴욕타임스 대 미합중국 사건에 대한 Hugo Black 연방대법원 판사의 판결

 한편으로는 언론이 정의감과 소신을 가진 채로 순수하게 보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영화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신문사도 일종의 인간들이 모인 집단으로서의 회사기 때문에, 주주, 사주, 직원들(기자 등), 정치권, 구독자 등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문제는 힘 있는 자를 견제하는 가장 훌륭한 장치로서 언론이 주목을 받지만, 동시에 힘 있는 자를 비호하기 가장 좋은 도구가 언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론의 힘은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고, 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은 점점 더 고도화된 수단으로 나타나고 있다. 

 참고로 오늘날 워싱턴포스트는 아마존의 회장이자 세계적인 거부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소유하고 있다. 

 

 

 


3)

 사실 이 영화의 초점은 워싱턴포스트 최초의 여성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Katharine Graham, 1917-2001)에게 맞춰져 있다. 사주 집안에서 나고 자라 아버지와 남편이 회사를 경영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아버지와 남편 사후 회사의 경영자로서 역할을 떠안게 된다. 능력을 입증할 기회 없이 자리에 앉게 되어 주변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회사의 재정 문제로 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하며, 보도를 하지 않으면 회사를 나갈 기세인 기자들(the press), 정치권 인맥들과의 관계 등 사면초가의 압력에 짓눌려(press) 있는 모습이 묘사된다. 영화에서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로 만족하면서 살던 그레이엄이 (비록 떠맡은 자리지만) 국가적 사건 앞에서, 회사의 운명을 앞둔 상황에서 결단함으로써 내면적 도약을 이루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역시 믿고 보는 대배우인 메릴 스트립은 우리에게 실망감을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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