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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장미여도 가시는 있다. - 영화 《라 비 앙 로즈(La môme)》, 2007 본문
영화 《라 비 앙 로즈(La môme)》, 2007
1)
한 소절만 들어도 들어본 적이 있는 명곡의 주인공,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1915-1963)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프랑스어 제목 "La môme"는 142cm의 작은 키에서 비롯된 별명인 "La Môme Piaf(The Little Sparrow, 작은 참새)"를 의미한다.
2)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라는 영어판 제목(근데 프랑스어)은 피아프의 대표곡 제목이기도 한데,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Heureux, heureux à en mourir(행복해요, 죽도록 행복해요.)"라는 노랫말처럼, 피아프는 사랑 충만한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꺾어놓은 장미에서 나는 향처럼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오히려 그 인생은 향을 맡으려다 장미 가시에 자꾸만 찔리는 모양새에 가깝다. 그렇기에 피아프의 노래는 인생의 깊이가 진하게 담겨 있지만, 그 정도가 나였으면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다.
[인생의 역경이 위대한 예술로 승화되었다는 점에서 멕시코 초현실주의자 화가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가 떠오른다.]
이윽고 영화 클라이막스에서 "Non, je ne regrete rien.(아뇨, 전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이 울려퍼지는데, 마지막 순간을 교차편집하여 인생을 응축하여 회고하는 명장면이 되었다.
3)
그래서인지 에디트 피아프의 성격은 파동으로 치면 마루와 골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다. 좋게 표현하면 느끼는 감정의 폭이 넓은 것이요, 나쁘게 말하면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 하더라도, 피아프와 같은 감정으로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피아프가 경험한, 사랑이 주는 '죽을 만큼의 행복'을 동경하면 할수록, 역시 피아프가 겪은 '죽을 만큼의 절망'에 대한 두려움을 무시할 수는 없게 된다.
4)
마리옹 코티야르(Marion Cotillard)는 이 작품에서 에디트 피아프 그 자체가 된 듯한 연기를 통해, 각종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 정도의 연기력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이 배우를 처음 본 것이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2012)에서였는데, 역시 배우 연기력의 문제라기보단 각본이나 연출의 문제였던 것 같다..
흥미롭게도 이 배우와 "Non, je ne regrete rien."가 등장하는 영화가 또 있으니, 바로 《인셉션(Inception)》(201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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