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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의 바다에서 딸 찾기 - 영화 《서치(Searching)》, 2018 본문
영화 《서치(Searching)》,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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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갔다가 실종된 딸을 찾고자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스릴러, 가족 영화이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모니터 화면으로 진행되는데, 자칫 잘못하면 갑갑하게 느껴질 수 있는 방식임에도 세심한 연출과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통해서 참신함과 긴박감, 감동과 소소한 재미를 조화롭게 담아냈다.
가령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이는 미세한 움직임에서 사용자의 망설임이나 감정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또 카메라에만 포착되는 장면들은 마치 어떤 공포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이런 연출 방식을 Found Footage라고 하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한편 등장인물 중 하나가 숨기려다가 알리바이 때문에 마지못해 저스틴 비버 콘서트를 간다는 것을 밝힌 부분은 소소한 웃음을 제공한다.
실종된 딸의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고 온라인 공간에 퍼졌을 때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오늘날 온라인 공간의 양태를 잘 반영했다. 누군가는 태그를 달면서 걱정을 하고, 누군가는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될법한 불확실한 유언비어나 추측을 남발한다. 누군가는 이 기회를 이용해 자신의 유명세를 높이기 위해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비극적인 일이 발생했고, 이를 '연결된 사회'인 온라인에서 다룬다고 하여도, 어차피 그 연결은 피상적인 것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결국 비극이든 희극이든 온라인 공간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제3자일 뿐이고, 그들에게는 온갖 사태들이 가볍게 소비할만한 감자칩(혹은 팝콘) 정도인 것이다.
2)
영화 속 실시간 장면들은 모두 컴퓨터에 전송되는 센서(카메라)에 의해 포착된 것인데, 인공물에 의해 보여진 것들로만 구성된 영화라서 참신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가 포착하는 모든 정보는 센서(감각기관)에 의해 포착된 것이다. 인간의 오감인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이라는 것은 각각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정보들을 감각기관(눈, 귀, 코, 피부, 혀 등)을 통해 수집하여 뇌에서 해석한 것이다. 정보를 수용하는 기관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면, 장차 각종 새로운 센서 기술과 함께, 인공지능이나 딥러닝으로 불리는 기술들의 발달로 지금 존재하는 AI와는 차원이 다른 '판단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영화 《그녀(Her)》(2013)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가능해질까?
정보화 세계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그 자체로 객관적이기 어려우며, 해석하는 자의 주관에 의해 객관성을 상실한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인 아버지의 행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정보를 '채택'하고 '해석'하는 일련의 활동이 엄격한 의미에서는 얼마나 오류를 저지르기 쉬운지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비합리적인 '오해'나 '의심'으로부터 사건이 해결되는 아이러니까지 확인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주어진 정보만을 가지고 철저한 논리와 증거에만 입각하여 판단을 하기는 어렵고, 현실은 우리에게 그런 절대불변의 증거를 수집할 시간을 주지는 않는다. 흔히 '직관'이나 '직감' 등으로 불리는, 어쩌면 본질적인 신뢰의 대상이 아닌 능력을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도구로 쓰일 때가 의외로 많다. 마치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을 때 놓았던 '78수'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3)
순수하게 자기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기 어려운 것처럼, 개인정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규정하기란 어렵다. 이에 더 나아가 개인정보를 어느 수준까지 보호해야 하는지 또한 손쉽게 딜레마의 대상이 된다.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딸의 계정을 해킹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개인정보를 가볍게 여긴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자기 딸의 목숨이 달린다면 그런 한가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자기 자식을 잘 안다고 생각해도 자식은 자식이고 부모는 부모다. 내가 몰랐던 자식의 어떤 면이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이 영화에서처럼 급박한 일이라면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행동에 나서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식 입장에서는 이런 식으로 자신의 내면이 공개되는 듯한 기분이 불쾌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애초에 개인정보라는 것이 무엇인지, 개인정보의 유용성, 그것을 왜 보호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려를 충분히 하고 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인의 권리라는 것이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영역이 확장되고 예외사항이 자꾸만 생기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지만, 대체로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앞으로 이러한 것들을 탐구 주제로 설정하여 공부하기 시작한다면 매우 흥미로운 시간을 보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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