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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도 자기 직관을 믿을 것인가?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본문
이래도 자기 직관을 믿을 것인가? -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
Perihelion 2020. 5. 20. 11:01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생각에 관한 생각』, 김영사, 2012
Daniel Kahneman, 『Thinking Fast And Slow』, 2011
1)
행동경제학(行動經濟學, behavioral economics)은 기존의 경제학이 전제하고 있는 '합리적인 인간상'에 도전하며 비합리적인 경제행위의 토대를 인간의 현실적 행동과 선택에서 찾고자 한다. 인간의 비합리적 행위는 일상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으며, 그 존재는 실험적으로 입증 가능하다. 합리적이면서도 비합리적인 인간의 총체적 모습을 모두 고려하지 않은 이론은 절음발이 이론일 뿐이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2)
인간의 사고 과정은 빠르고 직관적이며 관행적이고 자동적이며 총체적인 '시스템1'과, 느리고 분석적이며 비판적이고 반성적이며 개별적인 '시스템2'로 구성되어 있다. 흔한 상황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채로 시스템1에 따라 편리하게 판단을 완료하고, 집중과 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시스템2를 가동하여 문제를 엄밀하게 해결하고자 한다. 사람의 첫인상을 구성하는 작업은 시스템1, 새로운 스타일의 수학 문제를 푸는 행위를 시스템2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 두 체계로 사고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은 대단히 성공적이며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인 착각'에 빠지는지를 실제 사례와 실험으로 잘 보여준다.
인간은 합리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동시에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존재인 인간을 단순히 합리성으로만 쪼개어 판단하기만 한다면 인간이라는 연구 주제의 다양한 측면들을 낭비해버리는 참사가 아닐 수 없다.
높은 지능을 바탕으로 오랜 훈련을 거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하는 과정에서조차 시스템1에 의해 휘둘리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법률이나 의료 분야와 같이 개인의 일생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업무에서 그러한 비합리와 편향이 반영된다는 점이 인상적인 동시에 상당히 우려스럽다. 타인의 자유나 신상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직업이라 할지라도 예외가 아니라면, 나의 귀중한 일생의 어떤 부분이 누군가의 배고픔에 의해 좌우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억울한가?
약사, 회계사에서부터 의사, 판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은 한편으로는 인류가 인류 아닌 것에 종속되는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는 두려운 상상력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시스템1에 의한 변수를 차단할 수 있는 중대한 기회라는 생각마저 든다. 일각에서는 인공물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나, '판단'의 영역에서만큼은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충분히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차 도입될 인공지능의 시대가 시스템1로부터의 편향에 대한 대안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정-반-합의 과정과 같이 시스템1과 2의 더욱 합리적인 조화를 모색해낼 수 있을지 주목하게 된다.
3)
시스템1의 작용은 참으로 신기하다. 저자는 다양한 실험 및 연구들을 통해 사람이 시스템1을 통해 얼마나 많은 '어림직잠heuristic'을 하는지 보여준다. 어림짐작을 하는 방식은 제각각이고, 이는 '편향bias'과 함께 오류 가능성을 감수하고 사람의 사고를 편리하게 해준다. 그러한 사고 과정으로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하나하나가 아주 흥미롭다.
점화효과 priming effect
시간적으로 먼저 제시된 자극(점화단어prime)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표적단어target)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현상
예시) "SO_P"를 놓고 빈칸 채우기를 할 때, '먹다'라는 단어를 먼저 보면 SOAP(비누)보다 SOUP(수프)를 떠올리기 쉽다.
평균 회귀 regression to the mean
예언된 변인에서 극단적인 값을 가져야 될 사람이 덜 극단적인 예언된 특성을 지니는 경향성
예시) 오늘 평균보다 월등이 잘했으면 내일은 평균에 가까운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상대적으로 내일의 성과는 '성과가 낮아진 것'처럼 보이게 되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칭찬을 하니 다음에는 못하고, 화를 내면 다음에 잘하더라'는 전형적인 평균 회귀에 의한 인지적 착시
설득력있는 문장을 쓰는 방법
=> 실제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아래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면 사람들에게 진실처럼 받아들여지기 쉬운 문장을 만들 수 있게 된다.
* 아래의 수법(?)에 속지 않도록 시스템2를 적극적으로 가동해야 함
- 가독성을 극대화한다.(질 좋은 종이, 굵은 글씨, 색깔 등)
- 익숙한 내용을 현학적 언어로 옮기면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진다.
- 간결하고 기억하기 좋은 표현
- 시처럼 운율을 맞추라.
확증편향 confirmation bias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
사람들은 흔히 현재 자신의 믿음에 어긋나지 않을 법한 자료를 찾는다.
예시) 자신의 입장에 부합하는(만족스러운) 정치적 입장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부정하는 예시
후광효과 halo effect
일반적으로 어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평가를 할 때 그 일부의 긍정적, 부정적 특성에 주목해 전체적인 평가에 영향을 주어 대상에 대한 비객관적인 판단을 하게되는 인간의 심리적 특성
예시) 대통령의 정치가 마음에 든다면 대통령의 목소리와 외모도 덩달아 좋아하기 쉽다.
마음에 드는 선생님이 하는 수업의 과목이 덩달아 좋아하게 된다.
닻 내림 효과(기준점 효과) anchoring effect
모르는 수량을 추정하기 전에 특정 값이 머리속에 떠오를 때, 그 떠오른 값을 기준점으로 삼아 그와 가까운 숫자를 추정치로 내놓는 효과
예시) 간디가 114세가 넘어 사망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35세가 넘어 사망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보다 사망 나이를 훨씬 높게 예측한다. 어떤 집이 얼마면 사겠는지 생각할 때도 질문에서 제시한 가격에 영향을 받는다.
대표성에 기댄 예측을 하면서 통계적 사실을 간과하는 사고
무언가를 연상하게 하는 전형적인 이미지에 따라 대상의 다른 측면을 단정하는 문제
예시) 뉴욕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뉴욕 타임스'를 읽는다고 할 때, 그는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일까 아니면 대학을 나오지 않을 사람일까?
-> 대표성으로 추측하면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라 하겠지만, 뉴욕 지하철에는 박사보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다.
=> 대표성에서 나오는 직관적 인상은 정확할 때도 많지만,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다.
사후 판단 편향 hindsight bias / 결과 편향 outcome bias
이미 일어난 결과를 놓고 이것의 인과관계와 논리를 사후에 짜 맞추는 태도.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미 일어난 사건의 경우 자신이 과거에 그 사건에 대해 예상한 확률을 과장하고, 일어나지 않은 사건의 경우 원래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엉터리로 회상함.
관찰자들은 결정의 질을 평가할 때 결정 과정의 타당성은 따지지 않고 결과가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따진다.
예시) 2001년 7월 10일에 주어진 짧은 정보가 역사를 뒤흔들 9.11 참사를 불러일으킬 줄을 미국 정보기관 의사결정자 중에 누가 예측을 했겠는가?
사후 판단 편향과 결과 편향은 일반적으로 위험을 회피하게 하지만, 무모한 도박을 벌여 승리한 장군이나 사업가처럼 무책임하게 위험을 감수하는 무모한 지도자에게 선견지명과 대담함이라는 후광을 씌워줄 수 있다.
계획 오류 planning fallacy
사람들이 어떤 일을 마치는데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때 비현실적인 최적상황을 가정하는 경향 탓에 무리한 계획을 세우고야 마는 오류
집단이 '외부 관점outside view'을 고려하지 않고 '내부 관점inside view'에 따라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예측을 하는 탓에 실제 결과는 당초 예측과는 멀어지게 된다.
예시) 예외적으로 높은 성적을 거둔 어떤 모의고사 점수를 자기 성적의 평균으로 생각하여 수능 때까지의 점수 향상을 비현실적으로 낙관하는 예시
이 외에도 다양한 사례가 등장하며, 인간의 사고 편향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포스팅으로 다뤄도 될만큼 의미가 있으며, 또한 일단 이러한 편향과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을만큼 흔하다. 이러한 것들은 때로는 사고의 과정을 단순하게 만들어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지만,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리석음의 늪으로 빠지게 할 수 있다.
내용을 읽고 이해하면서 과거에 읽었던 구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 1841-1931)의 『군중심리(La psychologie des foules)』(1895)가 떠올랐다. 대중선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을 읽고 어떻게든 활용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래도 이러한 내용들을 아는 사람은 타인으로 하여금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끔 능숙하게 유도할 수 있으며, 아니면 적어도 자신이 그러한 함정에 빠지지 않게 예리한 정신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한 능숙한 조종가가 정치인이나 언론인, 혹은 대중선동가라면 어떻겠는가? 실제로 이들은 이러한 내용들에 관심을 보이기 마련이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공개적으로 하든 공공연한 비밀로 하든 이미 그러한 수단들을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의사결정을 한다. 매일 뉴스 등 외부 소식을 들으면서도 개별적인 정책이나 정치인들을 놓고 어떤 판단을 수행하고, 큰 이벤트인 선거를 앞두고서도 어떤 정치적인 판단과 의사결정을 수행한다. 일상적으로 누적된 정치적 판단이든 특정 시기에 찾아오는 선거든 우리의 앞날을 결정하는 매우 중대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보통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스템2를 엄밀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보통 모든 유권자가 시스템2를 치밀하게 사용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로 교육이나 사회 여건 등 여럿이 가능하겠지만, 어찌됐건 정치적 판단에 있어서 시스템1을 활용하는 현상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만 하는 것은 다소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선거 과정에서 어떤 후보를 선택하는 일의 중요성을 충분히 공감한다고 할지라도, 심지어 시스템2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충분한 정치적 효능감을 획득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지치게 된다. 지난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 5명의 공약 '요약 모음집'을 전부 검토한 일이 있는데, 이것이 요약일 뿐임에도 6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일상과 업무를 모두 감당하면서도 그러한 검토를 꾸준히 하고, 대통령선거 TV 토론회를 빠짐없이 챙겨보면서도 드는 생각은 특정 후보에 대한 확신보다는 어떤 후보가 더 부적절한지를 놓고 비교할 수밖에 없는 좌절감만 느끼게 되었다. 다행히 나의 경우는 효능감을 획득하지 못하였더라도 지치지 않고 이후 선거에서도 똑같은 노력을 기울일 여력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어찌 강요할 수 있겠는가? 비단 선거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든 어떤 정책을 지지하든 결론이 고통뿐이라면 뭐하러 힘들여서 시스템2를 가동하고 있겠는가? 그렇기에 보다 성숙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치 영역에서 가동하는 시스템2에 대한 무력감과 피로감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해주어야 한다. 구체적인 대책이야 상세한 분석과 논의로부터 출발해야 하겠지만, 그러한 대책이 없다면 앞으로도 유권자들은 알면서도 시스템1을 그저 선택할 것이다.
4)
예전에 공부를 하면서 접했던 하이트(Jonathan Haidt), 나바에즈(Darcia Narvaez)가 도덕심리학과 관련하여 했던 논의들이 이 책의 논의와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을 알게 되어 반가웠다. 최근의 도덕심리학 논의는 도덕적 직관과 반성적 도덕의 관계에 관하여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상황에 따라 이성적인 도덕적 판단을 하여 이를 실천하고, 이것이 반복되어 하나의 습관을 만들고, 습관들이 모여서 총체적이고 지속적인 의미에서 도덕적인 인간(자아)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최신 이론의 논의임에도 그 뿌리가 고대 그리스 지역 아테네에서 활동하던 아리스토텔레스에 있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상황에 맞게 실천적 지혜(phronesis)를 가동하여 중용이라 할 수 있는 행위를 찾아 실천하고, 이를 반복하여 하나의 습관, 하나의 탁월한 덕을 형성하여, 그러한 덕들을 지닌 탁월한 인간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이니 말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고전을 추앙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5)
시스템1은 안정적이지만 편견에 휩싸이기 쉽고, 시스템2는 반성적이지만 피곤하다. 그럼에도 시스템2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시스템1을 활용하는 것은 경험적으로 자연스럽게 축적되는 데에 반해, 시스템2를 활용하는 역량은 직접적인 훈련을 통해 습득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심지어 이것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얻어낼 수 있는 아이디어다!).
그렇기에 배움의 터인 학교와 가정 등 일상에서 현재와 미래의 시민들은 시스템2를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는 훈련을 거쳐야 하는데, 따지고 보니 내가 했던 강의의 의도나 기획, 그리고 구체적인 방식이 시스템2를 촉진하는 방향이라 다행스러우면서도 자랑스럽기도 하다. 시스템2를 습득하지 아니하고 성인이 되고 유권자가 된다면 정치적인 편향을 그저 간직하고만 있는 시민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라는 한명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경계해야 할 것이다.
6)
심리학 박사가 제시하는 다양한 심리학 연구들을 보자면 이 책은 심리학 저서이나, 동시에 표지의 표현과 같이 행동경제학 저서이기도 하며, 또 도서관 분류에 의하면 철학 저서이기도 하다. 학문의 분과를 초월한 논의를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으면서도, 심리학에서 경제학과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유를 넘나드는 저서가 쏟아지는 미국의 학문적 토양이 부럽기도 하다.
7)
<그 외 짧은 생각들>
- 논리와 수학(특히 집합과 통계)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 다양한 심리학 실험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에 감탄하게 된다.
- 도전적인 경제활동의 동력은 성공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보다는 실패에 대한 보정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8)
<흥미로운 구절들>
주식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업에 대한 정보가 이미 주가에 선반영되어 있는지의 여부이다.
환경에 안정적인 규칙성이 없다면 직관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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