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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이 된 인간의 좌절 - 영화 《아버지의 초상(La loi du marche)》, 2015 본문

작품 감상/영화

부품이 된 인간의 좌절 - 영화 《아버지의 초상(La loi du marche)》, 2015

Perihelion 2020. 6. 9. 16:45

 

영화 《아버지의 초상(La loi du marche)》, 2015
원제 뜻: 시장의 법칙
영어 제목: The Measure of a Man

 

 

 

1)

 티에리는 부당한 구조조정을 당했지만 저항할 힘을 이미 잃고, 새 직장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랑하는 아내, 장애가 있지만 꿈을 향해 노력하는 아들, 오랜 정이 깃든 집...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새 직장에 어렵게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또 다른 소중한 것, 내면의 무언가가 서서히 무너져감을 느낀다.

 

 

 

2)

 시장의 법칙이란 개인의 사정을 배려해주지 않는다. 취업 프로그램은 자기 책임만 다 이루면 된다는 식이고, 오랜 시간 보금자리였던 집은 시세로만 평가받는다. 직장에서는 감시카메라 보안요원으로 일하면서 고객들의 절도나 직원들의 근무태만이나 부정 등을 감시한다. 감시를 통해 절도 의심이 드는 고객을 잡고, 이들을 추궁하거나 경찰에 넘긴다. 마일리지를 자신에게 적립하거나 쿠폰을 빼돌리는 직원을 잡고 보니 이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가차없는 해고 통지다.

 직장에서든 어디서든 만나야 하는 이들은 인간적으로 만나는 존재라기보다는 법칙과 규정의 적용 대상들에 불과하다. 티에리로 대표되는 이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직접 몸과 몸으로 대면해야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방식은 탈인간화된 법칙일 수밖에 없다. 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적인 간극이 자아내는 괴로움을 티에리의 표정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인간을 거친 법칙의 적용 대상으로 보고 그러한 규칙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이들을 직접 대면할 필요가 없으니 이 간극과 고통을 모를 것이다.

 

 개인의 꿈을 응원한다는 현대의 프로파간다는 상업 광고 문구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그저 시대의 흐름이라는 이름 하에, 혹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법칙 아래에서 개인에게 삶이란 그저 '주어지 것'에 불과하다. 주어진 범위 안에서 열심히 발버둥치며 살아가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상업 광고의 프로파간다야말로 기만이며, 그러한 선전을 주도하는 자들이야말로 위선자이거나 현실 감각이 없는 사람이다.

 

 

 

3)

 월급이라는 것이 인간적인 추락을 목도하여 받은 대가라면 인생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들은 얼마나 되는 걸까?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그러한 대가라도 치르지 않는 실업자 상태에서는 더욱 큰 추락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작은 대가를 위해 너무 많은 것들을 걸어야 하는 현실은 장발장의 수감기간을 떠올리게 한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빵을 훔친 죄에 탈옥 시도가 더해져 말도 못하게 긴 세월을 복역하며 보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법이라는 것이 제2, 제3의 장발장을 양산한다면 사회의 진보라고 불리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일상화된 모멸과 수치를 겪는 계층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4)

 사회 모순을 비판하기 위해 화려한 수식이나 치밀한 논리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스테판 브리제(Stéphane Brizé, 1966-) 감독의 화법은 뱅상 랭동(Vincent Lindon, 1959-)이라는 배우를 만나 완성되었다. 《내일을 위한 시간》,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함께 뇌리에 각인된 영화.

 

https://ko.wikipedia.org/wiki/%EC%8A%A4%ED%85%8C%ED%8C%90_%EB%B8%8C%EB%A6%AC%EC%A0%9C
https://ko.wikipedia.org/wiki/%EB%B1%85%EC%83%81_%EB%9E%AD%EB%8F%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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