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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으로 끝나는 살인은 없다 - 김선미, 『살인자에게』 본문

작품 감상/도서

점으로 끝나는 살인은 없다 - 김선미, 『살인자에게』

Perihelion 2020. 7. 6. 18:43

김선미 지음, 『살인자에게』, 연담L, 2020

 

 

1)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위안이 되지 않았다.
(...)
마침내 내게 남은 진실은 단 하나였다.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삶은 그날의 사건이 만들어낸 꺼져가는 불씨일 뿐이라는 걸.(244쪽)

 

 비관에 의해 시도된 '동반자살'은 어머니만 죽게 하고 실패로 끝났다. 살인죄로 복역한 아버지, 남겨져 살아가던 두 아들, 그리고 할머니. 아버지의 복역 기간이 끝난 시기에 해소되지 못한 과거의 아픔이 새로운 사건을 불러온다. 살인과 살인미수가 있었던 그 사건은 한 순간의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의 그 사건이 망령이 되어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철저히 왜곡시켰다. 배경이 되는 살인사건은 누군가가 죽고 마는 하나의 점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점으로 이어지는 선이 되고, 또 선이 확장되어 점이 되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게 된다.

 

 

2)

 흔히 '동반자살'로 표현되는 그것은 사실 살인이자 극단적인 아동학대이자, 타인의 생명과 인생의 미래를 자의적으로 판단한 결과에 불과하다. '나 없이는 안 된다'는 오만과는 달리, 두 아들은 어찌어찌 살아가고 있다. 물론 그 삶이 상처 가득한 모습이라 안타까울 뿐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인간이 살아갈 미래를 내가 마음대로 판단해버리고 만다는 것만큼 오만한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아이는 태어나봤자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 터인데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겠지', '자녀를 저런 학교에 보내면 자녀의 인생이 망할지도 몰라' 등... 분명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시도한다고 하여도, 어디까지나 내가 경험하고 아는 것 안에서의 판단에 불과하다. 내가 마음대로 판단해버리는 정도만큼 판단을 당해버리는 사람의 자율성을 축소될 수밖에 없다.

 

 

3)

JOKER

I killed those guys because they were awful. Everybody's awful these days. It's enough to make anyone crazy.
걔네들이 못되게 굴어서 죽였어. 요샌 모두가 못되게 굴어. 이거 사람 미치게 만들 정도야.
(...)
Have you seen what it's like out there, Murray? Do you ever actually leave the studio? Everybody just yells and screams at each other. Nobody's civil anymore. Nobody thinks what it's like to be the other guy
밖에 나가보긴 했어 머레이? 스튜디오 밖으로 진짜 나가봤냐고. 다들 서로에게 소리 쳐대고 예의 같은 게 없어. 역지사지하는 인간이 없다고.

 - 영화 《조커(Joker)》(2019) 中

 

 영화 《조커(Joker)》(2019)에서 아서 플랙은 타고나기를 약하게 태어났으며 어릴 적부터 불우하게 자라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조커라는 캐릭터의 예외성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지만, 아서 플랙이 조커로 변모하게 되는 과정에서 주변인물들의 역할을 간과할 수도 없다. 그는 멸시와 무례를 일상적으로 겪으며 살아갔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진짜 인정이나 안정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고 그 빈자리를 환상 속의 것들로 채워나갔다. 멸시와 무례를 행했던 주변인물들이 아서 플랙으 조커로 만드는 데에 도의적인 책임을 전적으로 피해갈 수 있을까?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불우한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무시를 당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물론 상식적인 의미에서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한 사람들임은 분명하나, 편견으로부터 만들어낸 행동이 낙인을 만들어내고, 낙인이 그 낙인을 지지할만한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4)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편집의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편집에 따라 읽을수록 사태를 파악하면서 몰입하기 점점 쉬워지며, 무엇보다 동일한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상황상 등장인물들인 작은아들 진웅, 아버지, 큰아들 진혁, 할머니의 시선들이 각각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는 점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유전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혈육이지만 그 사건 하나로 인해 심적으로는 서로를 대하는 것이 가장 어렵게 되어버렸다는 점이 안타깝다.

 

 

 

 

5)

 어린이 시절 만화로 봤던 아서 코난 도일 경(Sir Arthur Conan Doyle, 1859-1930)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시리즈나 모리스 르블랑(Maurice Marie Émile Leblanc, 1864-1941)의 "괴도 신사(gentleman cambrioleur)" '아르센 뤼팽(Arsène Lupin)' 시리즈 이후로 글로 된 추리·미스터리 소설은 사실상 처음으로 읽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같은 장르 소설에 익숙하신 분들의 의견들로부터 복선이나 반전 등에 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생각을 해보면 추리소설이란 참 쓰기 어려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자가 읽는 도중에 반전이나 결말을 너무 쉽게 추리해버리지 않도록 적절히 숨기면서도, 동시에 너무 많은 것들을 숨겨버리면 인과적인 설득력, 그러니까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적절하게 복선을 심어줘야 한다. 물론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이해하기가 어려운 우연들의 덩어리이지만, 그 와중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인과성을 찾아서 사건들을 연결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아마 작가가 하는 일이라는 것은 온갖 고민들을 절충해야 하는 고뇌의 길인듯 싶다.

 

 노란 티셔츠, 노란 탑전망대, 노란 물감, 병아리 등 살인사건과 관련하여 꾸준히 상기되는 노란 이미지는 사건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제공하며, 개별적인 사건들을 시각적 이미지로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 앞서 말했던, 한 사건을 여러 시선으로 조명하는 편집 방식은 새로운 사건들을 파악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준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같이 입문하는 사람에게는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무난한 전개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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