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작품 감상 (67)
기억 보조 장치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Baby Driver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8 1)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다룬 작품들은 이미 많다. 그 중에서 이 작품은 그 잔인하고 끔찍할 수 있는 소재를 아이의 시선에서 다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가 아니면서도 홀로코스트 문제를 적절히 다룬다는 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청소년 및 학생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는 영화를 간만에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홀로코스트나 전쟁 등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다루는 영화는 그 본질상 표현이 거칠어지기가 쉬운데, 그 표현이 현실적인 것일수록 어린이 및 청소년들에게 교육용으로 활용하기가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홀로코스트의 내..
브룬힐데 폼젤 저, 토레 D. 한젠 편, 박종대 옮김, 『어느 독일인의 삶: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열린책들, 2018 Brunhilde Pomsel, Thore D. Hansen, 『Ein Deutsches Leben: Was uns die Geschichte von Goebbels Sekretärin für die Gegenwart lehrt』, 2017 1) 브룬힐데 폼젤의 삶을 비롯해 그녀가 괴벨스의 비서로 일했던 시대로부터 뽑아낸 현재와의 유사점은 잠들어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312쪽) 괴벨스(1897-1945, Paul Joseph Goebbels)는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1939-1945)으로 악명이 높은 나치당(Nazi..
로버트 파우저 저, 『외국어 전파담』, 혜화1117, 2018 1)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활동을 하고, 기타 여러 언어들을 섭렵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소통의 즐거움을 재료로 삼아 언어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보여주는 그는 여러 언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언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역사들'을 우리에게 흥미롭게 전해준다. 2) 오늘날과는 다르게 예로부터 언어의 전파는 말보다는 글을 위주로 전개되었다. 문자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 기능만이 아니라 종교 교리의 이해 및 왕권 확립을 위해 쓰였고, 종교의 전파와 왕권의 범위가 넓어지는 정도만큼 널리 확산되었다. 로마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라틴어가 전파되었고 그 흔적이 지중해 및 유럽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Susan Sontag,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1) 영화 《버드맨(Birdman)》(2014) 덕분에 알게 된 작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책을 읽게 되었다. 자국에 대한 무궁한 자긍심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미국인인 손택은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America was founded on genocide)", "미국적 삶의 특성은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향한 모독이다(The quality of American life is an insult to the possibilities of human growth)"와 같은 독설을 통해, 미국을 무조건적 애국이라는 환각으로부터 깨우기..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2017 1)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가진 '베이비(Baby)'는 빚진 것을 갚기 위해 강도단의 범죄행각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새로 만난 연인 데보라, 그리고 청력은 없지만 선한 양아버지를 위해 이 일을 그만두고자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 2) 베이비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이명을 가지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내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살고 있다. 에드가 라이트(Edgar Wright) 감독은 이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화 내내 다양한 노래들이 흘러나오도록 구성했다. 등장인물들의 동작 하나하나, 주변 사물들이 내는 소리들까지 모두 음악에 어울리게끔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히 멜로디나 박자가 아니라 가사마저도 상황에 부합한다는 ..
도진기, 『판결의 재구성』, 김영사, 2019 1)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겁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접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으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사가 사람이냐?" 등이 흔하다. 대중의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데에는 그럴 법한 맥락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판결문이라는 것은 그런 기본적으로 이유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판사 출신 저자는 그러한 판결들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논리성이라는 틀로 파헤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상하게 보이는 판결들 속에 '정상적인 이유'가 있거나, 엘리트 집단이 써낸 판결문에서도 덜 논리적인 요소들이 있을 수 있음을 확인한다. 일견 이상하게 보이는 판결이란 무조건 부정의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합리적으로 만들어지..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페스트』, 문예출판사, 2012 Albert Camus, 『La Peste』, 1947 1) 1940년대 어느 4월 16일,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오랑에 사는 의사 리외가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고, 그것은 흑사병(페스트) 창궐의 전조였다. 이듬해 2월까지 페스트는 도시를 뒤덮었으며, 이 소설은 그 전염병의 기간 동안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Dr. Bernard Rieux) 도시를 덮친 페스트 현장의 최전선에서 전염병과의 투쟁을 한 오랑의 의사. 병을 치료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던 그였지만, 가족과의 생이별을 거부하는 환자 가족이 잠금 문 앞에서 피로를 느낀다. 그럼에도 밤낮없이 페스트와의 싸움을 이어..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1) 89세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조병만 할아버지는 서로의 인생 76년을 공유했다. 오랜 세월이 흘러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음에도 두 분의 애정은 시작된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저 낙엽, 개울물, 눈으로 하는 가벼운 장난을 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곳에서 미소와 웃음이 올라오니, 화려한 기교로 만들어진 대사나 상황이 주는 웃음이 가볍게 느껴진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누구든지, 혹은 지금 당장 그러한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누구나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이런 노부부의 모습으로 상상으로 그려내지 않을까? 하지만 누구나 그러한 상상을 한다고 해도 누구나 그러한 미래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정도만큼이나 그러한 사람들이 ..
김선미 지음, 『살인자에게』, 연담L, 2020 1)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위안이 되지 않았다. (...) 마침내 내게 남은 진실은 단 하나였다. 앞으로 살아내야 하는 삶은 그날의 사건이 만들어낸 꺼져가는 불씨일 뿐이라는 걸.(244쪽) 비관에 의해 시도된 '동반자살'은 어머니만 죽게 하고 실패로 끝났다. 살인죄로 복역한 아버지, 남겨져 살아가던 두 아들, 그리고 할머니. 아버지의 복역 기간이 끝난 시기에 해소되지 못한 과거의 아픔이 새로운 사건을 불러온다. 살인과 살인미수가 있었던 그 사건은 한 순간의 사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때의 그 사건이 망령이 되어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철저히 왜곡시켰다. 배경이 되는 살인사건은 누군가가 죽고 마는 하나의 점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점으로 이어지는 선이 되고..
어윈 W. 셔먼 지음, 장철훈 옮김, 『세상을 바꾼 12가지 질병』, PNU Press, 2019 Irwin W. Sherman, 『Twelve Diseases That Changed Our World』, 2007 1) 특정한 소재를 중심으로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다. 최근에 그러한 책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 아주 반갑고, 다음에 접할 그러한 책이 또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질병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포르피린증, 혈우병, 감자마름병, 콜레라, 천연두, 흑사병, 매독, 결핵, 말라리아, 황열병, 인플루엔자, 에이즈 등 다양한 질병들에 대응하는 인간의 여러 모습들, 그리고 특정 질병이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여건들을 생각하면서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