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작품 감상 (67)
기억 보조 장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 2016 1) 다니엘 블레이크는 뉴캐슬에서 오랜 시간 목수로 살아오다 심장병에 의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질병수당을 신청하고자 한다. 하지만 상담원은 블레이크의 의사소견을 확인하는 것보다는 별 의미 없는 질문을 하여 그의 화를 돋우고, 화가 난 블레이크는 질병수당 대상자에 선정되지 못한다. 이에 불복하여 항고를 준비하면서 구직수당을 받고자 하는데, 이게 복지를 해주기 위해 만든 제도인지 복지를 안 해주기 위해 만든 제도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인터넷을 쓸 줄 모르는 블레이크에게 오로지 인터넷으로만 신청이 된다고 하고, 구직 활동을 하였음에도 제대로 증명을 하지 못해 제재 대상에 오를 위기에 처한다. 결국 가산을 팔고 빈곤하게 버..
홍춘욱,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로크미디어, 2019 역사에는 거대한 사건들이 있었고 우리는 흔히 그러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러한 인물들의 승리와 패배, 그리고 역사적 기록에는 이들의 '배경'인 사회적인 여건이 존재했고, 그 중 핵심은 경제라고 할 수 있다. 보다 좋은 경제가 뒷받침되어 있어야 더 좋은 여유가 생기고, 그러한 여유가 학문으로 이어져 과학 기술이 되고, 그러한 과학 기술이 곧 더욱 강한 생산력(보급품)과 무기가 되어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역사적인 사실과 함께 설명해준다. 앞서 말한 바로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넬슨 제독이 황제 나폴레옹을 이길 수 있었고, 루즈벨트의 미국이 히틀러의 독일을 이길 수 있었으..
영화 《인셉션(Inception)》, 2010 1) 어느날 지각을 해서 헐레벌떡 학교에 가는 꿈을 꾸고,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고 안도하여 다시 편안한 잠을 자다가 지각을 해버리는 꿈을 꾸고, 다시 그것이 꿈이어서 불안한 마음에 시계를 보니 위험한 시간이었음을 자각하는 식의 꿈을 꾼 적이 있다. 또 어느 날에는 내가 군대 신병으로 자대에 배치를 받은 것이다. 신병이 왔다고 일종의 환영회 비슷한 것을 하는데, 나에게 발언권이 주어져 "이미 한번 해봤으니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분명 한번 갔다 온 건데 내가 여기 왜 또 있는 거지?'하면서 꿈에서 깼다. 《인셉션》은 바로 이 꿈, 무의식의 바다의 심해까지 들여다본다는 흥미로운 소재를 활용한 영화다. 명작 SF답게 '인식이란 무엇인가?', ..
영화 《라 비 앙 로즈(La môme)》, 2007 1) 한 소절만 들어도 들어본 적이 있는 명곡의 주인공,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1915-1963)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프랑스어 제목 "La môme"는 142cm의 작은 키에서 비롯된 별명인 "La Môme Piaf(The Little Sparrow, 작은 참새)"를 의미한다. 2) "라 비 앙 로즈(La Vie En Rose, 장밋빛 인생)"라는 영어판 제목(근데 프랑스어)은 피아프의 대표곡 제목이기도 한데, 이 또한 의미심장하다. "Heureux, heureux à en mourir(행복해요, 죽도록 행복해요.)"라는 노랫말처럼, 피아프는 사랑 충만한 행복을 누리기도 하지만, 꺾어놓은 장미에서 나는 향처럼 아주 ..
영화 《더 포스트(The Post)》, 2017 1) 성과가 불분명한 베트남 전쟁이 기약 없이 진행되던 와중 미 국방부 장관 주도로 작성된 보고서인 가 언론에 유출되었다. 이를 와 가 보도를 하고, 이를 닉슨 정권이 저지하고자 한다. 영화는 유출로부터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의 시각에서 그려내고 있다. 2)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의 안보 사이의 대립은 중요한 사안이다. 21세기에는 '테러와의 전쟁'이나 '위키리크스(WikiLeaks) 폭로' 등 관련된 사안마다 어느 것이 중요하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이러한 논쟁은 국민의 의사결정을 정치의 원리로 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국민에게 의사결정의 힘이 없는 국가라면 국민의 알 권리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
영화 《친절한 금자씨》, 2005 1) "너나 잘하세요.", "친절해 보일까봐."로도 유명한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마지막이다(《복수는 나의 것》(2002), 《올드보이》(2003)->《친절한 금자씨》). 보는 내내 "종합예술로서의 영화란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영화의 표현 방식이 인상적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고, 회화를 감상할 수 있으며, 클래식 음악을 체험하게 된다. 2) 복수라는 주제로 전개되는 영화에 『법구경』이 등장하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짧고 쉬워서 유일하게 읽은 불교 경전이라 눈에 들어왔던 것도 있지만, 생각이 깊어질수록 법구경이 단순 장식이 아니라 주제 전달을 위한 장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안에서 금자는 다른 ..
영화 《디파티드(The Departed)》, 2006 1) 이 영화는 2002년에 나온 《무간도(Infernal Affairs, 無間道)》를 원작으로 하는, 미국판 무간도라 할 수 있다. 느와르 답게 먼저 봤던 한국 영화 《신세계》(2013)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무간도》 또한 그렇겠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신세계》에서는 이런 장면으로 나왔었지!'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유사한 상황 설정이나 장면들을 차용(오마주)하면서도 영화마다의 색깔을 잃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간 순서 2002 무간도(Infernal Affairs, 無間道) 2003 무간도2: 혼돈의 시대(Infernal Affairs II, 無間道II) 2003 무간도3: 종극무간(Infernal Affairs III, 無間道 ..
L. 레너드 케스터, 사이먼 정 지음,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현암사, 2014 L. Leonard Kaster, Simon Chung, 『Thirty one of the greatest trials in world history』 인간은 판단을 한다. 사소하게는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의 컨디션에 따라 옷을 결정하는 것부터, 내 주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는 노력, 담당해야 할 일에서 순발력 있게 내려야 할 판단 등 온갖 종류의 판단을 하고 산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이 항상 적절하게만 작동하기는 어렵고, 흔히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잘못에 대한 판단 또한 이루어지는데 가장 공식적이고 대표적인 유형이 바로 법정에서 행해지는 판결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판결들 중 ..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폴리테이아, 2011 (『Politics as a Vocation(Politik als Beruf)』, 1919) 언론 매체를 통해 정치인들이 행하는 이상한 일들에 분개하고 그러한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일은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왜 문제이며, 우리가 어떤 것에 초점을 두어 비난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즉답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나 "내가 저 사람의 상황이라면, 나라고 해서 안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섣불리 비난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정치인으로서도, 정치인에 대해 판단하는 사람으로서도 "이 상황에서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써 ..
영화 《킹스 스피치(The King's Speech)》, 2010 1)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중대한 국가적 위기의 시기를 앞두고 영국의 왕이 된 조지 6세. 심각한 말더듬이 증세를 가진 그가 언어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 공포를 극복하고 우정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담은 영화다. 아버지인 조지 5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형제 중 형은 사교적이고 자신감이 있으며 패션센스도 훌륭하지만, 왕실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다닌다. 미국 출신 이혼녀, 심지어 두 번째 이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하질 않나, 왕실의 품위나 규율 등에 대해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생은 아버지의 말을 잘 듣는 편이나, 지나치게 소심하고 특히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