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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공간을 만든다 - 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본문

작품 감상/도서

공간이 생각을 만들고 생각이 공간을 만든다 - 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Perihelion 2022. 9. 9. 18:00

 

유현준 지음, 『공간이 만든 공간: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을유문화사, 2020

 

1)

 사람은 보통 자기가 살아온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마련인데, 건축가인 저자는 공간이라는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전공 특성상 사상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나에게 있어 이러한 접근은 상당히 신선했으며, 한편으로 나의 시선이 특정한 방식으로 한정되지 않았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만나는 일이 주는 즐거움은 나로 하여금 책 읽기를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 

 

 

2)

 책의 구조는 동양과 서양이 각자의 여건에서 서로 다른 공간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자연스레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발전시켜왔음을 설명한다. 비가 많이 오는 동양은 벼농사를 짓고 주어진 재료 특성상 목조 건물이 주류가 되고, 이에 따라 기둥 중심 건축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외부와의 경계가 모호한 개방감을 갖게 되었으며, 주변 경관이나 자연환경과의 조화를 중시하여 단청 디자인이 발달하게 된다. 관계와 비움을 강조하게 되고, 건축의 평면이 다방향성을 띠고 발생학적으로 증식하는 모양을 보인다. 빈 공간을 강조하는 모습은 동양의 게임인 '바둑'이 빈 공간을 만들어야 이기는 룰을 갖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를 통해 우리는 노장의 비움의 철학을 떠올리게 된다. 
 반대로 서양의 적은 강수량은 밀 농사를 짓기 적합하며, 재료의 여건으로 인해 석조 건축이 발전하게 된다. 그에 따라 벽이 중심이 되고 작은 창문을 사용하게 된다. 이는 외부와의 구분을 강조하여 실내 장식을 강조하는 흐름으로 나아간다. 확고한 구분은 절대적 선과 악의 구도를 익숙하게 만들며, 세상을 수학으로 바라보는 피타고라스의 유산이 더해져 좌우대칭성과 일방향성을 비롯한 기하학적 패턴의 중첩에 따라 건물이 만들어진다. 서양의 게임인 체스는 위계질서와 유목 전투를 반영한다. 칸트의 1인칭 철학(주관을 강조하는)이 이러한 건축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3)

 물론 이러한 동-서양 대립 구도는 언제나 거칠게 느껴진다. 애초에 동서양이라는 구분 자체가 거친 것인데, 동양이라고 모두 벼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목조 건축을 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서양도 마찬가지라서, 한국이나 중국의 건축, 로마나 파리의 건축 등으로 세분화하여 명명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동양에는 '장기'가 있고,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은 서양에도 있으니까.

 

 

4)

 어쨌든 이러한 서로 다른 출발점과 전개를 지닌 건축의 이질적인 흐름이 현대에 와서 만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하학적 균형미를 강조하는 건축에 규칙성을 탈피한 요소가 가미되며, 벽과 기둥이 하나의 건축 안에서 혼합된다. 2차 산업혁명 이후 발달한 강철 기술을 통해 철근 콘크리트의 사용이 가능해지고 훨씬 더 자유로운 연출이 가능해졌다. 공간의 '비어있음'이 주는 매력을 적극 활용하게 되며, 특히나 건물에 들어오는 경로에서 사람의 시선을 일종의 이야기 흐름으로 고려한 건축 디자인이 아주 흥미롭다. 이윽고 오늘날에는 의상이나 패션, 산업디자인과 건축이 융합되고, 컴퓨팅 기술을 통해 분야간 이종교배가 촉진되어 더더욱 다양한 모습의 건축이 우리 눈을 즐겁게 한다.

 

 

5)

 저자는 엘리베이터와 철근 콘크리트의 사용으로 표준화되다시피 한 국제주의 양식 고층 건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창의적인 건축가에게는 대동소이하게 생긴 고층빌딩들로 즐비한 도시의 모습이 아쉬웠으리라. 하지만 나는 의식주에 있어서 실용성과 효율성을 (때로는 극단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국제주의 양식이나 대한민국의 아파트 숲의 모습이라고 해서 크게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제로 거주사는 사람, 업무를 보는 사람에게 있어 자기 공간이 디자인적 다양성에 치중하여 눈의 즐거움이나 사변적 만족감을 주는 데에 그친다면, 그러한 건축은 반쪽짜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건축가에게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지만, 단순 실험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 영위하는 공간이라면 안전, 전기, 가스, 수도, 냉난방, 이동 동선의 효율, 경치, 통풍, 위생, 입지, 환경 등 실용적인 고려를 멈추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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