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보조 장치
니체적인 성장 드라마 - 헤르만 헤세, 『데미안(Demian)』 본문
헤르만 헤세 저, 구기성 역, 『데미안』, 문예출판사, 2018
『Demian. Die Geschichte einer Jugend』, 1919
『Demian: The Story of Emil Sinclair's Youth』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아, 오늘에서야 나는 그것을 알았다.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1)
헤르만 헤세의 이 책은 '주어진 존재로서의 나'를 초월하는 '내가 만들어가는 존재로서의 나'를 강조한다. 자기동일성을 지니며 타자와 구분되는 '나'를 찾기 위한 과정과 방법은 다양하지만, 이 책에서 나타난 과정은 니체적인 냄새를 강하게 풍긴다. 니체는 자아의 성장을 '낙타-사자-아이'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설명한다. 곧 주어진 삶을 그저 감당하는 낙타로서의 삶을 인간은 살아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족된 자아일 수 없기 때문에 사자가 되어 기존의 속박을 거부하고 파괴한다. 자신 안에 있었던 토대, 곧 주어진 토대를 파괴한 뒤에 그야말로 순수한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새로운 가치를 정립해나간다. 이 책에서의 구도 또한 그러하다. 어린 시절 가족들의 공간이 첫 번째 세계에서 불안과 어두움의 두 번째 세계, 그리고 의존할 것이 모두 사라진 이후에 스스로 창조해나가야 하는 세 번째 세계라는 비유는 그러한 니체의 사상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2)
인간은 태어나고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양한 관념과 생각을 습득하게 된다. 나 또한 다양한 삶을 겪으면서 축적한 여러 생각들이 쌓고 쌓아 지금에 이르렀고, 앞으로 또 새로운 생각들에 의해 변형된 사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심리 하나하나를 해체하고 바라보고 재구성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성가신 과정이다.
다만 그러한 작업들을 거치고 나서 내가 '채택한' 사고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보다 가치있는 삶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이미 이러한 삶에 발을 들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