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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에 대해 -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본문
정치'인'이 목표로 해야 하는 것에 대해 -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Perihelion 2020. 3. 10. 18:14
막스 베버 지음, 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폴리테이아, 2011
(『Politics as a Vocation(Politik als Beruf)』, 1919)
언론 매체를 통해 정치인들이 행하는 이상한 일들에 분개하고 그러한 정치인들을 비난하는 일은 주변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왜 문제이며, 우리가 어떤 것에 초점을 두어 비난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즉답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나 "내가 저 사람의 상황이라면, 나라고 해서 안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들면 섣불리 비난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정치인으로서도, 정치인에 대해 판단하는 사람으로서도 "이 상황에서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써 윤리적인, 혹은 정치철학적인 기준을 어느 정도는 내면에 세울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책들 중 하나가 바로 막스 베버가 쓴 "Politik als Beruf"다.
Beruf는 소명(vocation)으로도, 직업(professional)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렇기에 막스 베버 이 저서 제목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이건 단지 저자의 실수로 인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의도적인 제목이라 할 수 있다. 곧 직업으로서 정치인이라면 가져야 할 태도가 있고, 또 그러한 정치인은 마땅히 어떤 소명의식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베버의 이 책에서 최소한으로 뽑아내야 할 핵심 중 핵심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 지배를 정당화하는 내적 근거로는 전통적 지배, 카리스마적 지배, 합법적 지배가 있으며,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갖춘 지도자가 머신(표를 모으기 위한 당의 조직)의 힘을 받아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 정치인은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지녀야 한다.
- 정치인으로서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를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한다.
- 신념 윤리: 자신이 목표로 삼고자 하는 것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밀어붙일 수 있는 마음
- 책임 윤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적절한 수단을 채택하는 마음
결국 정치 현상은 복잡하게 일어나며, 자신의 신념만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정치를 할 수 있는 정치가는 없다. 그렇기에 정치가에게는 단순 행정 관료로서의 마인드와는 다른 지도적 마음과 확신을 지닐 필요가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적인 당의 지원, 폭넓은 대중의 지지가 모두 필요한 것이다.
과연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는 베버가 말하고자 하는 그런 정치인이 얼마나 있는가? 무엇보다 미국 정치의 역사를 말하면서 제시하는 '엽관 정치'라는 말이 흥미롭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이 엽관 정치가 성행하게 되었는데, 요약하자면 자신의 당선을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관직을 배분하는 행위이다. 물론 특정한 후보의 비전을 지지하고 이에 헌신하였으며, 그러한 지지자들에게 적합한 일들을 맡기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적합한 인재를 배치하고자 하는 것을 넘어 지지를 대가로 훗날 있을 관직 배부권에 자신의 자리를 요구하는 '거래'로 변질되었을 때, 정치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왜 이전 정권들을 비롯해서 항상 문제가 있는 후보자들이 장관 등의 직책에 거론되고, 국민적 공감이나 의회에서의 공감 없이 그대로 임명이 강행되는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의 현상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엽관 정치의 요소를 아예 배제하고서는 문제를 다각도로 고찰하기가 어렵다고 본다. 지지에 대가로 관직을 수여하고자 하는 암묵적인 약속 혹은 의무감이 과연 작용하지 않았을까? 개인의 약속에 국가의 운영을 종속시키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베버가 지적하듯이, 엽관 정치는 해당 직책에 최적인 사람을 배정하기에 유리한 체제가 아니며, 결과적으로 정치적인 비효율을 초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