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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가해자를 만들었는가? -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 본문

작품 감상/도서

누가 가해자를 만들었는가? - 수 클리볼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

Perihelion 2020. 3. 6. 15:50

 

수 클리볼드 저, 홍한별 역,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반비, 2016

Sue Klebold,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 2016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1999) 당시 CCTV 사진(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U5QG-I9Ced0)

 

1)

 가끔씩 TV에서나 보는 심각한 범죄 사건, 특히 총기난사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는 먼 나라 이야기인 것처럼만 여겨진다. 그러나 그러한 일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에 의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가해자 둘은 현장에서 자살했다. 충격적인 사태에 대한 추모가 있었으며, 이후 피해보상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법정 공방이 있었다. 또한 이 사태의 원인을 찾기 위한 관심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안타깝게도 사건 이후, 이 사건을 모방한 범죄 등이 연달아 일어났는데, 우리가 흔히 '조승희 사건'이라고 알고 있는 버지니아테크 총기난사 사건이 그것들 중 하나이다.

 

"조승희 사건"으로도 알려진 버지니아 테크 총격 사건(2007)에 대한 추모 현장(출처: https://www.history.com/this-day-in-history/massacre-at-virginia-tech-leaves-32-dead)

 

미국에서 발생하는 학교 총격 사건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출처: https://www.vox.com/2018/12/10/18134232/gun-violence-schools-mass-shootings)

 

2)
 여기까지만 다루면 그저 사회에 충격을 준 범죄행각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가해자들은 도대체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러한 악마가 된 것인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분명히 사람이었으며, 그 범죄자를, 범죄자가 되기 전에 가정에서 항상 보던 어머니의 입장이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가해자의 어머니가 썼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지적이고 공감적인 지평을 넓혀줄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자신을, 자신의 자식을 변호하려 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정말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찾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 변호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사건이 있은지 한참 뒤에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가 어렵게 쓴 책을 읽으면, 이 사건을 도저히 단순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총기난사 사건 가해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을 제외하고 읽으면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족의 이야기다. 그래서 충격적이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같이 극악한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만한 것이 딱히 없다. 물론 그럴싸한 원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폭력이 만연했던 분위기, 딜런의 종속적인 성향과 그 친구 에릭의 살해충동적 성향, 사소한 범죄행위로 인해 처분을 받은 일, 딜런이 했던 게임, 딜런이 봤던 영화 등...

 

 그런데 이 부분이 이 책을 읽으며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제시된 것들이 극심한 총기난사 사건의 원인으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그렇기에 충격인 것이다.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어떤 가정이든 심각한 범죄를 잠재적으로 품고 있다는 소리니까.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사람은 혼란을 느끼기 마련이다. 폭력을 유발할 것처럼 보이는 여러 원인들이 어떻게 심각한 사태를 초래하는지에 관해 불분명한 인과관계를 느끼는 만큼, 우리의 일상이 꼭 안전하고 평화로운 것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도저히 방심하고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3)

 한편으로 그러한 징후들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교훈을 전달한다. 가장 큰 부분은 역시 부모와 교사 등 주변의 세심한 관심이다. "그저 사춘기니까 그럴 수 있지.", "질풍노도니까 이 시기를 지나면 나중에 괜찮아질거야."와 같은 낙관론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알게 한다. 다른 어떤 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자살징후'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아이, 자살과 관련 없어 보이는 여러 이상증세들(섭식장애, 수면장애 등)을 단순하게 넘기지 말고 세심하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아이는 문제가 있어도 이를 주변 사람에게 속일 수 있다. 그것이 설령 그 아이를 태어나면서부터 본 부모라 할지라도. 

 또한 총격사건이 다른 사건에 영향을 주는 바와 같이, 그리고 일상에서 관찰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주변, 가족, 학교 등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폭력에 대해, 그것이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세심히 경계해야 한다. 당장 내가 알게 모르게 행하는 폭력이 있었을 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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