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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당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 - 쇼펜하우어 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Eristische Dialektik)』 본문
사실은 당하지 않는 방법에 대한 지침서 - 쇼펜하우어 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Eristische Dialektik)』
Perihelion 2020. 3. 5. 16:08
쇼펜하우어 저, 김재혁 옮김,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7
『Eristische Dialektik』, 1830
『The Art of Being Right: 38 Ways to Win an Argument』
(also The Art of Controversy, or Eristic Dialectic: The Art of Winning an Argument)
"상대방의 구체적인 주장을 절대화하고 보편화하라."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 ··· 이 방법은 주로 학식 있는 사람들이 학식이 없는 청중들 앞에서 논쟁을 벌일 때 사용할 수 있다. ··· 우리가 제기한 이의가 터무니없음을 증명하려면 상대방은 긴 논쟁을 벌여야 하고, 그것을 위해 과학적 원칙들이나 그 밖의 다른 문제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러나 청중은 그의 말을 쉽게 들어 주려 들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증오의 범주 속에 넣어라."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
1)
염세적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동원되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스킬들'을 이 책에서 제시한다. 이 책의 목차만 봐도 그러한 목록이 얼마나 비논리적인 것인지를 알 수 있지만, 동시에 일상 대화에서 많이 쓰이는 것들이며, 심지어 오늘날 방송에서 지식인들이 벌인다고 하는 토론에서도 볼 수 있는 것들이다.
2)
그러한 대화들이 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이 대화를 함에 있어서 오로지 논리와 이성만을 사용하지 않는 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득을 위해 언급한 logos, ethos, pathos를 유심히 보면 이성과 합리 이외에 사람이 설득되는 데에 감정이나 편견 등이 작용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나의 입장, 상대방에 대한 나의 태도, 평소 상대방이 보였던 모습 등이 발화된 말 자체의 논리성을 넘어서는 그 무엇을 제공한다.
이는 어쩌면 logos를 사용하는 인간 자체의 한계 때문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판단을 위해 이성을 사용하지만 그것이 전부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형사소송에서 사실관계를 다루는 경우를 떠올려보자. 검사는 특정한 사건에 대하여 법리와 증거들을 검토하여 기소를 할 수 있으며, 기소된 내용에 따라 재판 단계에서 유무죄 및 유죄일 경우 형량을 판단하여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이 전 과정에서 판단의 기초가 되는 증거들이 항상 과학적으로 100% 명백하게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 증거들 중에서 물적 증거의 비중이 낮고 진술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판결이 객관적이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기 쉽다. 진술이 일관적이었는지, 가해자와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관계는 어떠하였는지, 판결 대상인 사건 이후의 정황은 어떠하였는지, 각각 인물의 의도 등을 판단할 때 판단의 주체들(검사, 판사 혹은 그 집단 등)의 경험과 주관 및 사회적 분위기가 판결 과정과 결과에 반영될 수 있고,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어 보인다.
3)
일상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편견(prejudice)을 가지고 살아간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조차도 상대방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마당에,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단면만을 보고 그 사람의 전부를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부모가 어떻게 키웠길래", "사는 동네가 그러하니", "거기 출신들은 대체로 그렇다던데" 식의 말들, 사람의 인상이나 표정, 옷차림, 말투, 외모, 지위, 경력, 성취 등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현상 등은 우리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런 편결을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의견을 형성하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고, 그야말로 영혼의 교감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외부로부터 내면으로 침투하는 경험을 시시각각 파악하고 이를 나의 생존과 유익에 비추어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넘겨짚기'를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넘겨짚기를 능숙하게 잘 하는 사람은 사회적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여겨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좁은 식견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4)
쇼펜하우어는 이 책을 통해 비합리적 논쟁의 스킬들을 자유자재로 쓰기를 권장하고자 함이라기보다는, 그런 스킬들을 쓰는 상대방에게 '당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이 책을 쓴 것이며 독자들 또한 그렇게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온 사례들 중에서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도 없지는 않지만, 대체로 내용을 읽어나가면서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사례들을 떠올린다면 상당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이 책의 목차
모든 토론술의 기초
요령1 확대해석하라
요령2 동음동형이의어를 사용하라
요령3 상대방의 구체적인 주장을 절대화하고 보편화하라
요령4 당신의 결론을 상대방이 미리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
요령5 거짓된 전제들을 사용하라
요령6 은폐된 순환 논증을 사용하라
요령7 질문 공세를 통해 상대방의 항복을 얻어 내라
요령8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라
요령9 상대에게 중구난방식의 질문을 던져라
요령10 역발상으로 상대방의 의표를 찔러라
요령11 낱낱의 사실들에 대한 상대방의 시인을 보편적인 진리에 대한 시인으로 간주하라
요령12 자신의 주장을 펴는 데 유리한 비유를 재빨리 선택하라
요령13 상반되는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제시하여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라
요령14 뻔뻔스런 태도를 취하라
요령15 안개 작전을 사용하라
요령16 상대의 견해를 역이용하라
요령17 미묘한 차이를 이용하여 방어하라
요령18 논쟁의 진행을 방해하고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라
요령19 논쟁의 사안을 일반화하여 그 부분을 공격하라
요령20 서둘러 결론을 이끌어 내라
요령21 상대방의 궤변에는 궤변으로 맞서라
요령22 상대가 억지를 쓴다고 큰소리로 외쳐라
요령23 말싸움을 걸어 상대로 하여금 무리한 말을 하게 하라
요령24 거짓 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내라
요령25 반증 사례를 찾아서 단칼에 끝내라
요령26 상대방의 논거를 뒤집어라
요령27 상대가 화를 내면 바로 거기에 약점이 있는 것이다
요령28 상대방이 아니라 청중을 설득하라
요령29 상대방에게 질 것 같으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라
요령30 이성이 아닌 권위에 호소하라
요령31 당신의 말은 형편없는 내 이해력을 넘어서는군요
요령32 상대방의 주장을 증오의 범주 속에 넣어라
요령33 그것은 이론상으로는 옳지만 실제로는 거짓이다
요령34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요령35 동기를 통해 상대방의 의지에 호소하라
요령36 의미 없는 말들을 폭포수처럼 쏟아 내라
요령37 상대가 스스로 불리한 증거를 대면 그쪽을 공격하라
마지막 요령 상대가 너무나 우월하면 인신공격을 감행하라
맺음말
논쟁적 토론술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