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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감상/영화

아이 같이 순수하고 싶었지만 -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2017

Perihelion 2020. 8. 20. 17:46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 2017 

 



1)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가진 '베이비(Baby)'는 빚진 것을 갚기 위해 강도단의 범죄행각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새로 만난 연인 데보라, 그리고 청력은 없지만 선한 양아버지를 위해 이 일을 그만두고자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

 

 

 


2)

 베이비는 어릴 적 사고로 인해 이명을 가지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내내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서 살고 있다. 에드가 라이트(Edgar Wright) 감독은 이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영화 내내 다양한 노래들이 흘러나오도록 구성했다. 등장인물들의 동작 하나하나, 주변 사물들이 내는 소리들까지 모두 음악에 어울리게끔 구성되어 있으며, 단순히 멜로디나 박자가 아니라 가사마저도 상황에 부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2007)나 《허트 로커(The Hurt Locker)》(2008)와 같이, 배경음악 없이도 끝없는 긴장과 몰입을 유지하게 만드는 영화도 대단하지만,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가 나오면서 이를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능력 또한 대단하다. 마구잡이로 노래들을 끼워넣었으면 소리 과잉으로 인해 피로를 느꼈을텐데 이 영화는 피로를 느낄 틈도 없이 노래와 함께 전개가 이어진다. 이 영화가 아카데미 편집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후보였는데, 도대체 이 상들을 가져간 《덩케르크Dunkirk》(2017)는 얼마다 더 대단한 영화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2018년에 시상함)
90th Academy Awards

편집상 Best Film Editing
《Dunkirk》 – Lee Smithdouble-dagger (수상)
《Baby Driver》 – Paul Machliss and Jonathan Amos
《I, Tonya》 – Tatiana S. Riegel
《The Shape of Water》 – Sidney Wolinsky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 Jon Gregory

음향편집상 Best Sound Editing
《Dunkirk》 – Richard King and Alex Gibsondouble-dagger (수상)
《Baby Driver》 – Julian Slater
《Blade Runner 2049》 – Mark Mangini and Theo Green
《The Shape of Water》 – Nathan Robitaille and Nelson Ferreira
《Star Wars: The Last Jedi》 – Matthew Wood and Ren Klyce

음향효과상 Best Sound Mixing
《Dunkirk》 – Mark Weingarten, Gregg Landaker and Gary A. Rizzodouble-dagger (수상)
《Baby Driver》 – Julian Slater, Tim Cavagin and Mary H. Ellis
《Blade Runner 2049》 – Ron Bartlett, Doug Hemphill and Mac Ruth
《The Shape of Water》 – Christian Cooke, Brad Zoern and Glen Gauthier
《Star Wars: The Last Jedi》 – David Parker, Michael Semanick, Ren Klyce and Stuart Wilson

 

 

 

 

3)

 

B.A.B.Y

 Baby?라고 묻는 커피숍 직원에게 베이비는 자신의 이름을 친절하게 한 글자 한 글자 불러준다. 그렇다. 베이비는 '아기'라는 의미의 그 베이비가 맞다. 아기는 순수함의 상징이다. 모친의 재능을 이어받은 것인지, 어릴 적 얻은 이명 때문인지 어쨌든 베이비는 음악을 순수하게 좋아한다. 심지어 강박에 이를 정도로, 음악 없이는 살아가지를 못한다. 

 

 하지만 순수하게 음악만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 베이비의 현실이다. 갚아나가야 할 것을 갚기 위해서, 협박에 의해서 범죄에 가담하게 된다. 이름은 순수하지만 그의 삶은 전혀 순수하지 못하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베이비는 단순히 특수강도 행위의 공범임을 넘어서, 특수강도, 자동차 등 불법사용, 상해치사, 살인을 저지른 중범죄자다. 

 

 베이비는 범죄자들을 돕는 데에 자기 운전 실력이 사용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범죄자들과 자기는 엮이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항상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등 그 차단의 의지를 표현한다. 하지만 한번 범죄의 현장에 발을 들인 이상, 내 의지대로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굴레에 속박된 것과 같다.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절박하게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마는데, 빠져들었지만 빠져나오고자 하는 몸부림이 이끌어낸 결말은 그나마 부드러운 편이라고 해야 하겠다. 아니면 그동안 봐왔던 범죄 영화들이 너무 비정하고 잔인했는지도 모르겠다. 《디파티드(The Departed)》(2006) 같은 영화에서는 주인공이라서 봐주고 뭐 그런 거 없던데.

 

 

 

 


4)

 매력 있는 캐릭터들이 돋보이는 영화. 등장인물마다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서로 호흡이 잘 맞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상적인 캐릭터들이 각자 돋보이면서도 서로 조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은 흥미진진한 범죄 액션 영화를 빛나게 해주는 장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범죄를 다룬 작품에서 개연성을 치밀하게 엮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기도 하다. 닥(Doc)과 버디(Buddy)는 너무 낭만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이 범죄조직이라는 것이 도대체가 어떤 실체를 가지고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데보라는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 등등... 물론 이 영화의 초점은 음악에, 그리고 음악을 중심으로 엮여진 액션과 재미에 있기 때문에 개연성을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볼 필요는 없다. 애초에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양념으로서의 음악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영화화하기 위한 캐릭터와 액션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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