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작품 감상/도서 (35)
기억 보조 장치
전국도덕교사모임 지음, 『도덕적 시민의 눈으로 세상 읽기』, 해냄에듀, 2021 1) 시민적 역량을 갖춘 이들의 광범위한 정치 참여는 장기적으로 성공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기틀이 된다. 그렇기에 자라나는 이들을 시민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국가적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고, 그 관심이 어린 시절을 관통하는 공교육으로 모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적절한 시민들을 길러내고 있는가? 페리클레스의 연설 이후로 그러한 물음에 쉽게 긍정의 답을 할 수 있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이 책 또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보다 긍정의 모양으로 바꿔나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2) 최근에는 민주적으로 적절한 시민의 모습을 합리적 토론을 행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흐름인데, 그러한 취지에서 이 책은 오늘날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
유달승 저,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한겨레출판, 2020 1) 이 책의 저자 유달승 교수(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어과)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최초의 외국인이다. 그만큼 이란 땅에서, 이란 사람들과 직접 교류하면서 알게 된 이란의 모습이 더욱 진정성이 있게 느껴진다. 이란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입문용 교양 서적으로는 아주 적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가 자신의 삶을 통해 확보한 진정성이라는 것은 이러한 책에서 큰 가치를 지닌다. 다른 언어, 다른 가치, 다른 문화를 지닌 이국에 대한 풍문이나 다른 자료들을 거쳐 완성된 정보는 당연하게도 정확하기가 어렵다. 직접 그곳에서 살아보면서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겪으면서 얻어낸 앎보다 정확한 것은 없을..
손원평 저, 『아몬드』, 창비, 2017 1) 감정표현불능증(알렉시티미아, alexithymia)은 뇌의 부위 중 편도체가 정상 크기보다 작을 때 발생하는 증상이다. 아몬드 모양의 이 부위가 두려움과 공포 등 정서기억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편도체의 문제가 생기면 공포를 느끼지 않는 등 정서와 관련된 문제가 생기게 된다. 2) 소설의 주인공 윤재는 태어날 때부터 이러한 증상을 지니고 있었으며, 어머니와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반응'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익히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묻지마 살인 사건에 휘말려 할머니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기약 없는 병상 생활을 하게 되었고, 주..
베벌리 나이두 지음, 이경상 옮김, 『차별의 기억』, 생각과 느낌, 2007 Beverley Naidoo, 『Out of Bounds: Stories of Conflict and Hope』, 2001 1)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nd), 아프리칸스어로 '분리'라는 뜻이다. 동시에 유럽 이주민을 조상으로 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인종주의자들이 만든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살아있는 법률이었던 이 반인륜 정책들은, 국제사회에서 남아공을 배척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6인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해야 했을 정도로 길고 악랄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주요 정책들이 1991년에 상당수 폐지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남북한 분단에서 소련 붕괴에 이르는 세월 동안..
김영란 저,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풀빛, 2020 1)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곧 '김영란법'으로도 유명한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법관 취임 당시 '젊은 여성 대법관'으로서 존재 그 자체로, 그리고 여러 판결들을 통해 기본권 보장을 위한 진보적 변화의 한 흐름을 담당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2) 기본권이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누려야 할, 말 그대로 기본적인 권리다. 그러나 실제로 기본권이라고 하는 것이 널리 통용된 역사는 길지 않으며, 심지어 오늘날에도 기본권을 사회의 원리로 채택하지 않은 곳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기본권이 발달..
브룬힐데 폼젤 저, 토레 D. 한젠 편, 박종대 옮김, 『어느 독일인의 삶: 괴벨스 비서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열린책들, 2018 Brunhilde Pomsel, Thore D. Hansen, 『Ein Deutsches Leben: Was uns die Geschichte von Goebbels Sekretärin für die Gegenwart lehrt』, 2017 1) 브룬힐데 폼젤의 삶을 비롯해 그녀가 괴벨스의 비서로 일했던 시대로부터 뽑아낸 현재와의 유사점은 잠들어 있는 우리를 흔들어 깨운다. (312쪽) 괴벨스(1897-1945, Paul Joseph Goebbels)는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II, 1939-1945)으로 악명이 높은 나치당(Nazi..
로버트 파우저 저, 『외국어 전파담』, 혜화1117, 2018 1) 저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 활동을 하고, 기타 여러 언어들을 섭렵한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소통의 즐거움을 재료로 삼아 언어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보여주는 그는 여러 언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언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역사들'을 우리에게 흥미롭게 전해준다. 2) 오늘날과는 다르게 예로부터 언어의 전파는 말보다는 글을 위주로 전개되었다. 문자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 기능만이 아니라 종교 교리의 이해 및 왕권 확립을 위해 쓰였고, 종교의 전파와 왕권의 범위가 넓어지는 정도만큼 널리 확산되었다. 로마가 영토를 확장하면서 라틴어가 전파되었고 그 흔적이 지중해 및 유럽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 ..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Susan Sontag,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1) 영화 《버드맨(Birdman)》(2014) 덕분에 알게 된 작가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책을 읽게 되었다. 자국에 대한 무궁한 자긍심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미국인인 손택은 "미국은 대량학살 위에 세워졌다(America was founded on genocide)", "미국적 삶의 특성은 인간의 성장 가능성을 향한 모독이다(The quality of American life is an insult to the possibilities of human growth)"와 같은 독설을 통해, 미국을 무조건적 애국이라는 환각으로부터 깨우기..
도진기, 『판결의 재구성』, 김영사, 2019 1) 너무 가볍거나, 너무 무겁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을 접할 때가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반응으로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사가 사람이냐?" 등이 흔하다. 대중의 그러한 반응이 나오는 데에는 그럴 법한 맥락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판결문이라는 것은 그런 기본적으로 이유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판사 출신 저자는 그러한 판결들을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논리성이라는 틀로 파헤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이상하게 보이는 판결들 속에 '정상적인 이유'가 있거나, 엘리트 집단이 써낸 판결문에서도 덜 논리적인 요소들이 있을 수 있음을 확인한다. 일견 이상하게 보이는 판결이란 무조건 부정의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합리적으로 만들어지..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페스트』, 문예출판사, 2012 Albert Camus, 『La Peste』, 1947 1) 1940년대 어느 4월 16일,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오랑에 사는 의사 리외가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고, 그것은 흑사병(페스트) 창궐의 전조였다. 이듬해 2월까지 페스트는 도시를 뒤덮었으며, 이 소설은 그 전염병의 기간 동안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군상을 보여준다. 의사 베르나르 리외(Dr. Bernard Rieux) 도시를 덮친 페스트 현장의 최전선에서 전염병과의 투쟁을 한 오랑의 의사. 병을 치료하면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던 그였지만, 가족과의 생이별을 거부하는 환자 가족이 잠금 문 앞에서 피로를 느낀다. 그럼에도 밤낮없이 페스트와의 싸움을 이어..